지난 이야기
창준의 퇴근길에 한 고등학생이 물었다. '이수진 선생님'을 아냐고.
"이수진, 아냐고 물었어."
그것이 나와 그의 첫 만남이었다.
"이치호야."
이름을 물어보는 내게 그는 굳이 내가 왜 그런 말을 당신한테 해야 하지? 라는 얼굴로 뚱해 있다가 대답했다. 내팽개치듯 던진 말을 나는 하나하나 주워 담는다. 이치호.
말하고 나서 대답을 요구하는 마냥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저 표정. 남의 얼굴을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치 않았는데 그의 얼굴엔 쓰인 문장과 빈정거리는 뉘앙스까지 제대로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빡침'이 끌어 올랐지만 나는 뒷머리를 될 대로 벅벅 긁는 걸로 분노의 표출을 대신했다. 다시 이치호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다 메마른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수진을 아냐는 물음에, 바톤이 던져져 뭔가를 말해야하는 건 다름 아닌 내가 되었다. 얼굴로는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을 터였다.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므로. 하지만 입은 풀이라도 붙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가 너무 컸다. 난 눈만 꿈뻑거리다가 도리어 적반하장식으로 그에게 따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꼴사나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넌 누군데? 애시 당초 당신이라니..너 몇 살이야?“
그는 안 그래도 지루해 죽을 것 같은 영화 속 진부하다 못해 고리타분한 장면에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황당무계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려보이는 놈한테서 쉬이 볼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수진 선생님은 이런 사람에게 대체.."
제 신분을 밝히기는커녕 그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나를 까내리는 말투를 구사했다. 그렇다 이거지. 아무리 나를 우습게 보아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어느학교 몇 반 몇 번이냐는 상투적인 협박을 하려던 찰나, 그 호칭에 귀가 열렸다.
"선생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윽고 소리쳤다.
"너 설마.. 그때 그 꼬맹이???"
꼬맹이라는 표현에 그는 얼굴을 구겼다. 이제야 알겠냐는 듯 나를 쏘아본다. 건방진 표정을 보니 기시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녀의 존재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도 쏟아지는 혼란 속을 유영하는 내게, 그녀 옆에 있던 어린아이를 생각해내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이의 모습은 그 자리에 못박힌 채 변함 없었고, 남겨둔 그녀 외에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던 그 아이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녀가 아닌 어른을 어른 취급하지 않았던 아이. 괘씸해도 하는 짓이 귀여워 웃고 말았던.
“예전엔 나름 귀여웠던 것 같은데.”
무심코 나온 말에 치호가 눈썹을 구겼다.
“뭐라는 거야.”
새삼스럽게도 내가 그 아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치호 라는 이름에서 떠올릴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름 정도는 분명히 들었을 텐데.
새삼 아이의 시간이 나와는 결이 다르다는게 느껴졌다. 그 동안 나는 전보다 나아진게 없었다. 작았던 아이는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시간만 축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릴 정도였다.
자각하고 나서야 어릴 적과 많이 겹쳐져서 왜 이제껏 몰랐을까 싶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이치호는 말을 하면 돈이라도 내는 것 마냥 말을 아꼈다. 눈으로는 어쩐지 수많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도, 최대한 눌러 담고 넘어가는 걸로 보였다. 그게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 마땅히 할 얘기가 없는데도 그랬다.
결국 내 말을 끝으로 이어진 침묵에 백기를 든 건 나였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앞으로 아는 직원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끌고 회사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 게 바로 몇 분 전 일이다.
카페 내부는 직접 로스팅 한 원두만 쓴다는 주인의 말에 따라 은은한 원두향으로 가득차 있었다. 커피향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프랜차이즈 기세에 밀려 간신히 손님만 유지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원목 벽지와 어울리지 않는 거무죽죽한 와인색 소파를 보고 치호는 눈썹을 까닥였다. 몇 년도부터 보이지 않았던 건지 모를 미묘한 패턴의 식탁보-적어도 그런 이름이 적절해 보였다- 위에 두꺼운 유리를 올려놓은 테이블은 소파와 더불어 과거느낌의 세트장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법했다. 내가 먼저 앉아 소파를 통통 두드리면서 맞은편 자리를 눈짓했다. 치호는 경계를 풀지 않은 표정으로 겨우 자리에 앉았다.
"지금 완전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지."
"아니."
내가 턱을 괴고 쳐다보자 치호가 다시 말했다.
"조금."
나는 목청을 높여 웃었다. 커피 맛은 보장할게. 마셔보면 놀랄 거다 너?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대로 치호는 의구심을 풀지 않다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케냐AA를 한 모금 마시고선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꿈뻑였다. 맛있지만 바로 맛있다고는 인정 못하는 괴리감에 얼굴이 오묘해졌다. 사람들의 이런 표정을 보는 게 카페 주인의 낙이라고 했다. 들었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과연 일리 있는 말이다.
"맛있는 커피도 대접했겠다.. 하던 얘기마저 할까? 넌 이치호고, 수진이 데리고 다니던 아이야. 너랑 나랑은 솔직히 그다지 친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9년 만에 날 찾아온 이유는?"
물론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테고. 그 말은 삼켰다. 제법 도전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치호의 눈에 그제야 생기가 돌았다.
"도움이 필요해서."
"아하. 도움.."
겉저리를 뱅뱅 도는 말을 혀 속에서 굴리고 있자니 갈증이 났다. 떨쳐버리고 싶은 내 과거를 현재로 불러일으킨 이유가 도움이라.
나의 탁한 눈동자 속에 남을 도울만한 호의가 과연 남아있나.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나 있나. 9년 전 그 날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 기대지도, 기대받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살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자살,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그가 말했다. 강조라기보다는 힘겹게 버티는 말투였다. 아니라고 사정없이 외치는 목소리 같았다. 미친 듯이 부정하고 싶은데 말을 해야할 때, 그게 내 입 밖으로 나가며 소리로 만들어질 때. 쥐어짜는 듯 한 말은 형태소 하나까지 놀랍도록 정확하게 발음한다. 힘겨운 기운에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다잡았다. 무표정. 무감각. 무(無)를 채워 넣은 단어를 속으로 떠올렸다. 무. 무. 무....
"그러면?"
덕분에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말을 가장 믿지 못한 게 나였을 거다. 그래서 찾고,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을수록 모든 것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져버렸다는, 간단명료한 사실로 귀결되었다. 경찰이 나설 것도 없었다. 위조? 공작? 그런 것도 없었다. 가지런한 글씨로 유서를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떠났다.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그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정말이지 놀라울 만큼 전혀 없었다.
"당신, 별로 놀라지 않네."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보이던 치호가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눈빛에 한기가 서렸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내 말 믿지 않는구나."
"들어보고."
"못된 어른이네."
"너도 착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선생님이 자살했다고 생각해?"
"응."
"물리적인거 말고."
"아니."
누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 예상한 적도 없었지만 준비된 듯 대답은 거침없이 나왔다.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그런건 아무도 처벌받지 못한다. 처벌받더라도, 그녀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뒷목털이 누가 잡아당긴 듯 쭈뼛해졌다. 목이 갈갈했고, 어느새 나는 한쪽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본론부터 말할게. 최근 맡은 사업이 있지? DM클럽이라고."
떨던 다리를 딱 멈췄다. 허리를 곧추 세웠지만 치호는 나한테 말하던 상태 그대로였다.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신기했다. 이해 안되는 건 신기함이 더 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내 뒷조사 했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여기까지 올 리 없잖아."
뻔뻔한거 보소.. 황당해하는 내 반응과는 별개로 치호는 제 할 말을 시작했다.
"DM클럽 대표가 김도명이야."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치호가 작게 한숨 쉬었다.
"도명제약 이사장 김도명이라고."
그 순간 잘근 잘근 씹던 뭔가를 퉤, 내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씹던 것도 없고, 내뱉을 것도 없었다. 목지게 올라오는 무형의 덩어리가 식도를 막는 순간 드는 생각은 '참 바보 같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