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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Sep 24. 2019

서로 바라지 않는 최선

하나의 사랑을 위해 다른 길을 달리는 연인


어쩌면 우리는 서로 바라지 않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는 말했다. 우리는 잦은 싸움에 패잔병처럼 지쳤고 그럼에도 서로를 사랑하는(사랑한다고 믿는) 각자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 순간 우리는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연 것 같았다.

우리의 사랑 방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듯 사랑의 궤적도 다를 수 밖에. 우리는 같은 사랑을 향하지만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들 같았다. 기약 없는 언젠가에 결국 도달해 만나겠지만 그 전까지는 닿을 수 없어 한 사람이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줄 수 없고 넘어지면 치료해 줄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서로의 사랑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렸다.

사랑을 시작한 이후로 내 삶의 축은 사랑이 되었다. 무슨 수를 써도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의 멍청이 아니면 사랑의 천재였다. 사랑이 지지 않는다고 확신해다. 내가 별처럼 불타더라도, 별처럼 스러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예언했다.

사랑을 시작한 이후로 네 삶의 축은 너 자신이 되었다. 너는 무슨 수를 써도 삶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는 자꾸만 삶의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너는 삶의 천재였지만 그 삶은 너의 것이 아니었다.

너는 사랑을 시작한 이후의 삶을 소중히 여겼을까? 사랑이 시작된 후로 너는 너 자신을 중심에 세워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삶의 축을 치열하고 비루한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두고 조금 더 사랑을 잘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나는 삶의 축이 자신인 너를 동경했고, 너는 삶의 축이 사랑인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이 여름이 모두 나의 것이라고 느낄 때 너는 소반을 펴두고 땀을 흘리며 중고로 산 영단어책을 외웠다. 우리가 둘 다 학생이었을 때 나는 네게 전화를 걸어 기분이 좋아지면 그제야 공부를 시작했고 너는 공부가 잘 되는 날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건 사소하지만 우리의 결정적 차이였다.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너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워 듣기를 원했지만 너는 이어폰 스플리터에 두 개의 이어폰을 꽂아서 들었다. 한 쪽으로만 들으면 음악도 반 쪽이 되잖아. 나중에 너는 내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고 네가 밥을 굶어가며 모았던 고가의 이어폰들을 내게 막 주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고음질의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너와, 풍경과, 여름이 빚어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성의 음악이었는데.

잠들 때는 함께 잠들었지만 눈을 뜨면 너는 다른 방에 가 있고 내 곁에는 네 강아지 둘이 코를 골며 내 잠을 지키고 있다. 피곤해보여서, 더 편히 자라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자서 혼자 자는 게 더 편하다. 네 방은 관처럼 작다. 그렇지만 네가 다른 방으로 가버리면 숨소리를 맞추고 같은 베개를 베며 꿈을 나눠가질 사람이 없는데.

몸살이 났는데 너를 보러갔다. 가는 길에 토했다. 너는 내게 화를 냈다. 내가 이러면 감동 받을 줄 알았니? 전혀 아니야. 오히려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 너를 5분동안 보기 위해 두 시간 넘게 간 적도 있고 30분을 보기 위해 네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너는 웃으면서 말한다. 고맙지만 다음부턴 정말로 이러지 않아도 돼.

나는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번거롭고 힘든 게 정말 싫어. 부담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그냥 싫어. 네가 날 만날 때 아프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고 네 할일을 모두 끝내고 남는 시간에 나를 만났으면 좋겠어.
남는 시간에...?
네가 없는 시간은 죽은 시체時體인데?

사소한 오해가 쌓여 서로 다른 길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 하지만 결국엔 화를 낸다. 아름답고 투명한 오해가 아닌 비열하고 악의에 찬 오해들. 가끔 나는 사랑이라는 게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퍼붓고 싶은 악의를 한번 더 참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연인은 서로의 짐승을 참는 사람들 서로의 짐승을 참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짐승이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되고 치욕을 느끼는 사람들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짐승을 서로의 입술로 간신히 막는 사람들 마침내 모든 수치와 오욕을 견뎌내고 서로의 짐승을 거두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에게 독을 퍼붓다가 울면서 빈다. 마치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듯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듯이, 우리는 서로의 성녀이자 탕아고 신이자 거지이고 경전이자 금서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의 죄와 용서의 굴레를 침범할 수 없다.

서로 바라지 않는 최선을 다하는 죄.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죄다. 온통 선의로만 이루어진 파국으로 가는 길. 끝없이 직선으로만 달리는 우리에게 끝은 어디일지, 끝은 무엇일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고 어디까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느 날 네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시간에 네가 없는 건 죄악이다.
나는 오타인 줄 알고 답장했다.
최악이야?
죄악이야.
나는 또 그만 죄 지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연인은 서로에게 지금 여기 없다는 것부터가 죄악이구나. 당장 너를 만나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는 오늘도 내일도 출근을 하고 개 같이 일을 하고 밤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외 글을 쓰고 잠들 것이다. 너는 이 일이 끝나면 저 일을 하고 투잡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영어과외를 받고 녹초가 된 몸으로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너는 이런 시간들이 우리의 사랑을 더 공고하고 빛나게 해주리라 믿지만 나는 네게 당장 가지 못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느낀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 더 열심히 돈을 벌고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너는 나를 데리러 와 밤바다로 드라이브를 가자. 서로가 원하는 최선의 거리를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자. 이제 우리의 평행선이 좁혀진다. 비록 하나의 트랙 위에서 뛸 수는 없지만 바로 옆 트랙에서 뛰고 있는 너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는 웃고 있는가? 혹은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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