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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Jan 19. 2020

Shape of Love

무기력해지지 않을 것이다. 무력해지지 않을 것이다.

연인과 시간을 갖기로 했다. 기약은 없다. 앞으로 어떤 시간을, 얼마나 긴 시간을 건너야 하는 지는 우리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사랑에 물성이 있다면, 손에 잡히고 어루만질 수 있다면 나는, 사랑을 두 손으로 귀하게 받아 들고선 깨끗하고 따뜻한 물에 잘 씻길 것이다. 곱고 향기 나는 옷을 입히고,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포근하고 푹신한 이불을 내와 턱 끝까지 꼼꼼히 덮어준 후 한 잠 잘 재울 것이다.

많이 낡았으리라. 사랑은 그간,
많이 고단했으리라.

낡고 다 닳아버린 사랑을 저 깊은 곳에서 꺼내어 본다. 너 거기 있었니, 라고 말을 걸어보고 싶다. 너무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다. 낡은 만큼 익숙한 기억들이 많다. 함께 걷던 종로3가와 5가의 숱한 골목들, 말하는 모든 것들이 노래가 되고 잘 못 들은 오해가 시가 되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빛이었다. 8년 간 지겨울 만큼 드나들었던 골목의 길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나는 늘 누군가의 옆얼굴만을 보며 걸었다. 그 얼굴에서 세상의 모든 빛이 다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럴 때 사랑은 미완성된 지도의 모양으로 내게 다가와 펼쳐진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스스로의 보잘 것 없는 생활을 돌보고, 그 생활에서 패배한 뒤에 서로를 찾았다 사랑을 나눈 후 연인은 언제나 그 공간에서 가장 시원하고 맑은 물을 한 컵 따라 내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늘 그 물을 달게 받아마셨다. 두 손으로 컵을 꼭 쥐고,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때의 사랑은 투명한 유리컵 모양이 된다. 내 열 손가락의 지문이 모두 다 찍혀있을 것이다.

애인은 자신을 감정쓰레기통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내게 질책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한 집에 있어도 각자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 애인이 잠든 방에 가보면, 애인은 늘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은 나를 주고 자신은 얇은 이불 하나를 몸에 돌돌 말고 잠들어 있었다. 애인에게 내 이불을 덮어준 적이 있었나? 웅크린 채 만들어 있는 그 몸 위에 무언가를 덮어준 적이 있었나? 그럴 때 사랑은 낡고 구겨진 이불 모양이 된다.

잠든 애인 대신, 애인의 강아지들이 내게 다가와 몸을 붙이고 잤다. 체온을 가진 것들, 체온을 옮겨주는 것들, 작고 어린 것들을 함께 돌본다는 감각이 소중했다. 사랑이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둘만의 것이 아니라 저 어린 것들의 것이기도 하구나. 그럴 때 사랑은 살을 가진, 살아 움직이는 흰 털뭉치가 되고.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내가 잘 오고 있나 뒤를 돌아봐 주기도 하고.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다짐한다. 무기력해지지 않을 것이다. 무력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만 ‘믿음 의상실’을 ‘믿음의 상실’로 읽는다. 연인은 내가 썼던 글 한 구절을 그대로 읊는다. 네가 어디까지 관대해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시험당하는 느낌이었다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저녁까지 불이 환한 공방의 이름은 ‘키리에’다. 키리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로 시작하는 기도문. 키리에, 키리에. 그럴 때 사랑은 어두운 길 위에서 작고 선연하게 빛을 내뿜는 작은 간판이 된다. 나는 불 밝은 간판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걷는다. 키리에 공방이 나오면 집은 곧 금방이야.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갈 수 있어. 몇 번이고 새긴다.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장 위로가 됐던 건 사르트르가 남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한 줄의 감성으로 사람의 표면만을 얄팍하게 만지려드는 문장보다는 차라리 타인은 지옥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르트르에게 더 위로받았다. 그럴 때 사랑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 하나로 까맣게 남는다. 지난 8년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게로 틈입하려 밀고 들어올 때, 마침내 그이가 내 안에서 나를 넘어설 때, 열린 댐처럼 그이가 범람할 때. 그 이질감을 지금껏 어떻게 견뎌온 걸까. 그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지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도모하곤 했다.
서로라는 지옥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손가락 끝이나 입술 위에 심장이 있다고 믿었다. 내 몸의 가장 끝 부분, 다른 사람과 닿을 수 있는 가장 첫 부분. 그곳까지 박동이 전해졌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부분이었으니까. 언제부턴가 손을 잡지 않고 입술을 맞대지 않으니 심장은 몸의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고 사랑 역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음 생에는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태어나게 해줘. 사람은 누구나 지옥을 품고 있으니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태어나 온전히 사랑만 할 수 있게 해줘. 나는 사람이 아닌 사랑을 믿는다. 다 낡아버린 사랑을 믿는다. 내 안으로 숨어든, 서로의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든 사랑을 믿는다. 보이지 않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을 신앙이라 부르며. 각자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분명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다시 한 번 찾아내리라.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던 사랑을 찾아내리라. 나는 미완성 지도를 펼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두근거리는 손가락으로 길을 찾아 그린다. 그럴 때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흰 백지. 나는 누군가에게, 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는다. 그럴 때 사랑은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 아직 내뱉지 않은 말. 아직 세상에 없기에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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