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윤 Aug 05. 2021

문장을 잃어버린 세계

그러나 나에게 가장 순정한 욕망이 하나 있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심정으로, 씁니다. 아니면 이것이 생애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씁니다. 저는 지금 백지 앞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를 느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설원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얼어붙다 못해 통증을 느끼는 발,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말과 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문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투병하지 않습니다. 병과 싸우면 내가 집니다. 저는 매일 병을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때로는 무참히, 처절하게 패배하면서 살아갑니다. 병과 함께 전력을 다해, 진력을 내어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약을 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잠들어 있습니다. 눈 감으면 우리는 다 같은 어둠 안입니다. 눈 감은 나는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세상은 눈 감은 나를 선명하게 지켜보고 있겠지요.


아픈 사람은 아픈 것만으로도 다 한 거예요. 동료가 언젠가 그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마 내 안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말은 ‘아프다’일 것입니다. 어쩌면 병이 모든 문장을 좀먹고, ‘아프다’라는 단어 하나만 남겨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단어가 ‘아프다’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면, 저는 쓰겠습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그러다가 정말로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오게 되면, ‘아프다’라는 말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면.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을 믿고 나아간다.” 글을 쓸 때마다 제가 늘 되뇌던 말이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마다 신비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분명 처음엔 내가 쓰기 시작한 글인데, 어느 순간부터 글이 나를 이끄는 느낌. 나는 그저 글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느낌, 내 안에서 아직 쓰지 않은 문장들은 넘쳤고,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습니다. 저는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의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언젠가 쓰여지게 될, 가능성으로 충만한 문장의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지금은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뇌를 쥐어 짜내는 것만 같습니다.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은, 앞으로도 영원히 쓰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앓기 전의 저는 글 속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웠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 3개월간 어떤 글도 읽고 쓰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는 간신히, 아주 간신히 쓰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엉킨 수세미가 굴러다니는 것 같습니다. 한 문장 쓸 때마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고, 쉬었다가 다시 씁니다. 어쩌면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이 나를 이끌었던 그 순간은, 백지를 공포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던 그 신비로운 나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힘이 듭니다.

글을 쓰는 것이 무섭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차라리 눈을 감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가장 순정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쓰고 싶다’라는 욕망일 것입니다. 쓰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악에 받치지 않고, 온몸과 마음을 쥐어 짜내지 않고,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에 몸을 맡긴 채 순하고 온전하게, 다시 노트에 한 자 한 자씩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저는 쓰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쓰는 사람입니다. 쓸 수 없으면 ‘쓸 수 없음’에 대해 쓰는 사람입니다. 그것만은 제가 숨이 붙어있는 한, 영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씁니다. ‘쓸 수 없음’에 대해. 문장을 잃어버린 세계에 관해.


저의 세계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발화된 문장이 세계의 표면을 이루고, 발화되지 못한 문장들이 내면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쓰인 문장보다, 쓰이지 않은 문장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나요. ‘사랑’이라는 이름에 포섭되지 않은 사랑은 얼마나 많을까요. 말의 그물이 놓친 세계, 문장으로 쓸 수 없는 것들을 문장으로 써야만 하는 딜레마,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끝내 언어로 써내고 싶은 집요한 마음. 그 팽팽한 장력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쓰는 문장들에 매달려 있습니다.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빈곤해진 언어에 갈증을 느낍니다. 차고 맑았던 언어, 샘물같았던 언어들이 점점 말라갑니다. 땅이 갈라지고 균열은 내부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은 모르게, 그렇지만 나는 알아요.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 서사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던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저는 하루에 스무 개가 넘는 알약을 먹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먹습니다. 언젠가 나를 설명할 것들이, 증명할 것들이 그 알약밖에 남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알약이 내 상태를 말해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까 봐 두렵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작 알약 따위가 나를 증명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씁니다.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아무렇게나 씁니다. 무엇이든, 씁니다. 간절하게 씁니다.


나는 소윤입니다.

나는 소윤입니다.

나는 쓰는 사람입니다.

나는 쓰는 사람입니다.

내 몸에 피가 도는 것처럼, 나는 쓰는 사람입니다.


세계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들어갈 관 만한 크기로 줄어듭니다. 눈을 감으면 몸과 얼굴 위로 흙이 쌓이는 환각을 느낍니다. 눈 감으면 모두가 같은 어둠 속. 어둠은 편안하고, 아늑합니다. 하지만 빛은 언제나 금 간 곳으로 들어오듯이.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듯이. 나는 아직 나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남아 있습니다. 조야하고 빈곤하다면 나는 나 자신의 조야함에 대해 쓰겠습니다.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면, 언어를 잃어가는 고통을 쓰겠습니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면, 무너지고 있는 세계를 쓰겠습니다. 끝의 끝까지 쓰겠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것처럼 인사합니다.

저는 소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