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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Nov 21. 2021

프레드릭, 잘 있니?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아.

곡식을 다 거둔 쓸쓸한 갈색 들판이 떠오르는

늦은 가을에 내 마음에 들어온 너.

다른 계절이었다면 너의 모습과 너의 말들이

그렇게 쏙 들어왔을까 싶어.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서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던 너.

다른 식구들은 먹을 것을 모으느라 바쁠 때

한편에 가만히 앉아 있던 너.

나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다는 사실에

텅 빌 뻔한 가을의 가슴 차올랐어.


그래선지 작년 겨울의 찬 바람은 차가웠고

흰 눈은 새하얀 쌀가루처럼 보였단다.

다 네 덕분이야.

나도 모르게 모아둔 햇살색깔과 이야기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지.

인생의 겨울이 와도 끄떡없을 만큼

많이 모아 두고 싶어 지더라.


널 만나고 난 뒤의 봄엔 꽃과 나무만 보였어.

곁에 있던 꽃과 나무가 새롭게 다가오더라.

꽃의 색들과 나무 말들이 차곡차곡 쌓였단다.

갑자기 부는 찬바람에 나가지 못할 땐

빛이 길게 들어와 비춰주고 데워주길래

한낮의 을 모으기 바빴단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들과

깊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 순간들이

너의 모습과 닮은 같지 않니?


얼마 전 식물원에 갔다가 

가을 들판 같은 색을 보았어.

네가 더 생각나고 궁금하더라.

먹을 게 떨어져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식구들에게 시를 들려주던 멋진 모습도 떠오르고.

네가 모아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가

추위와 굶주림을 이길 수 있게 해 준 뒤에

가족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벌써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려고 해.

올 겨울은 더 혹독하게 추울 거라는 말을 들었어.

프레드릭, 지금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니?


나는 추운 겨울을 위해 무얼 모아두었더라.

너를 따라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았고

가끔씩 용기를 모으기도 했어.

용기는 시시때때로 필요하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 년 내내 모으는 게  있어.

소리, 음악과 자연과 아이들 소리를...



가을 들판 같은 색 (서울식물원)




<작년 가을 끝에 만난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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