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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변 May 07. 2016

성폭행 피해 직후 대응하기

혼란스러운 처음 몇 시간, 처음 며칠을 위한 조언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강간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 경우 준강간 혹은 준강제추행의 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라고 하여도 가해자의 잘못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1. 정신을 차리는 즉시 원스톱 센터(해바라기)로 연락하세요. 가까운 24시간 원스톱 센터와 연계해 줍니다. 여성긴급전화는 국번없이 1366입니다.


2. 강간 혹은 강제추행의 피해자가 되었다면(혹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의심이 든다면) 절대로 샤워를 하지 말고 가능한 조속히 병원에 가시기 바랍니다. 성폭력 범죄는 대개 목격자가 없고 피해자 진술 일관성에 의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건 직후 원스톱센터와 성폭력 응급키트가 있는 병원에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절대 샤워를 하지 말고, 즉시 신고하고 성폭키트가 있는 병원에 가세요.

3. 피해현장에서 탈출할 때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를 경우(예:낯선 모텔) 추후 피해장소를 찾는 데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탈출하면서 파악하기 어렵겠지만, 주변의 큰 간판을 한두 개라도 기억하세요. 진술과 수사에 필요합니다(CCTV 확보 등).


4. 당장 생각하기에는 피해가 경미하거나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지 혼란스럽거나 아는 변호사를 선임할 생각일 때에도, 성폭력사건이라면 수사기관(경찰)이 피해자에게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원하는지"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일단 필요하다고 하세요. 나중에 법적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혹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더라도 수사 초기 단계에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지정되어 있으면 절차적으로 유용합니다.


5. 피해시에 입었던 옷을 속옷 뿐 아니라 겉옷까지 모두 모아 입었던 모양대로 보관해두세요. 사진을 찍어 두어도 좋지만 가능하면 빨지 말고 그대로 모아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보기 싫다고 버리면 안 됩니다. 당시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가 진술의 일관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한두 달 뒤에 기억하려고 하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입었던 옷을 빨거나 버리지 말고, 입었던 형태대로 모두 보관해 두세요.

6.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국선변호사를 요청할 때 여성 변호사를 희망합니다. 자연스러운 선호이지만, 현실적으로 법률구조공단 등 국가가 채용한 소수의 성폭력범죄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 외의 변호사들은 자신의 생업과 생활이 따로 있는데 짬을 내어 공익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에 대한 법률조력은 현재 변호사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으므로(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여성변호사를 희망한다고 고집하면 도와 줄 변호사를 찾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릴 수 있습니다. 명단에서 시간이 되는 변호사를 찾아 전화를 돌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성별 무관하게 국선변호사를 신청하여 지정을 받아 수사기관, 가해자 등과의 간접적 연락 창구를 열어 수사를 진행시키고, 이 변호사는 좀 아니다 싶으면 그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의 성별과 변호사의 사건 이해도가 꼭 같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7. 가해자가 지인이라면 전화, 카톡 등을 절대로 차단하지 말고 받는대로 캡처하시고, 통화내용 자동저장 앱/기능이 있다면 활성화 해 두세요. 지인 가해자의 경우, 사건 직후에는 자신의 행동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언행을 하였다가 수사 진행중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건 직후 가해자의 연락을 차단하지 말고, 받고 저장해 두세요.

8.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가.SNS 등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곳에 피해사실을 올리기보다는 나.상담소를 방문하시고, 다.오프라인 지인들에게 카톡 등으로 상황과 고통을 토로하세요. 가.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우려가 있으나(사건의 해결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고요) 나.,다.,는 정황과 피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9. 사건시에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면 생각나는 대로(예를 들어 현장을 벗어났을 때, 지하철을 탔을 때, 집에 들어갔을 때 등) 기본 바탕화면을 캡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자체가 증거로 쓰일 것은 아니고, 정신이 없어 기억이 엉키기 쉬운데 휴대폰 화면 캡처는 간단하니까 이렇게라도 해 두시면 각 시점의 시간과 날짜를 저장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이때 내가 뭐 했지? 어디 있었지?') 일관되고 정확한 진술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바로 기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성폭력 피해 위기 상황에서 말이나 글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진정되었을 때, 또한 몇 달 이상 걸리는 수사기간 동안 필요할 때 내 기억을 되살려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한 방법으로 기억의 꼬리를 남겨 놓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의 꼬리를 만들어 두세요.

10. 정말 안타깝지만 종종 보는 사례인데요, 가해자가 가까운 지인인 경우(예:동기, 직장동료) 사건 이후 '법보다는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고자 피해자가 가해자와 개인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데...하지 마세요. 하더라도 신고 이후에 하세요.


대체 나한테 왜 그랬는지 얘기를 들어보려고 하거나, 고소 등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데 계속 볼 사이이니 그냥 덮고 넘어갈 생각으로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먼저 말하거나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실제로 결국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덮고 넘어가더라도, 피해자에게 백해무익합니다.


가해자에게 먼저 연락하여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지 마세요.

11. 국가에 고용된 피해자국선전담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성폭력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만 해도 곰곰 생각해 보면 정확하지는 않아도 아마 가해자 대리 경험과 피해자 상담 경험이 비등하고, 가해자를 변호할 때에는 가해자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피해자를 대리할 때에는 가해자를 기소시키고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이는 변호사의 업무윤리로, 한쪽 경험의 절대량이 극단적으로 많거나 업무상 책임이 명확한 경우(예: 성폭형사사건의 가해자 대리를 수백 수천 건 하여 역량이 누적된 경우 혹은 국가에 채용된 피해자국선전담으로 연 수백 건의 피해자 대리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통상 변호사가 양측을 다 경험해 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경험적으로도 양쪽 입장에 다 서 본 편이 당연히 절차 이해도가 높습니다. 피해자만 조력해 본 변호사를 희망하거나, 가해자 대리를 많이 맡은 변호사라고 하여 불신하면서 선임을 저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선임하세요.


또한 원스톱 연계 상담소, 신뢰하는 상담 선생님이나 의사, 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시민단체, 종교가 있다면 종교시설 등에서 정서적 지지와 지원을 구하고, 변호사로부터는 수사와 재판에 대한 안내, 가해자 및 수사기관과의 연락 등 절차적 보호를 구하는 식으로 지원자원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 보다 효과적입니다.


12. 6, 11에 이어, 성폭력 사건 전담 검사 중에 여성검사 비율이 다른 범죄 담당에 비해 높은 편인데, 여성 피해자가 검사의 성별에 동지감을 느끼고 수사과정에서 방심해서 실수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검사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검사는 피의자(가해자)를 수사하여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고소인 혹은 신고인)를 조사합니다. 그러니 검사가 나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주거나, 피해자가 진술하지 않은 부분까지 이해해 줄 것을 막연히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같은 이유로, 담당검사가 남성이라고 처음부터 막연히 불신할 필요도 없습니다).  



민우회

후원링크 http://www.womenlink.or.kr/donations

3천원 문자후원 #2540-3838

한국여성의전화

후원링크 http://hotline.or.kr/page_qDBM89

3천원 문자후원 #2540-1983

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링크 http://www.sisters.or.kr/load.asp?subPage=710



* 이 글은 본래 2016. 5. 5. 트위터에 대중 일반을 위한 메모 형식으로 작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140자의 한계가 있었고 여러 경로로 널리 전파되어, 하나의 글로 정리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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