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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May 12. 2022

“내가 버린 쓰레기가 아닙니다”

자유 라디오 5월 6일 기사



괴물이 되어버린 러시아에서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목소리. (러시아 언론 "자유 라디오" 기사 번역)


“내가 만든 쓰레기가 아닙니다” 반전 시위의 새로운 양상


부차의 비극을 추모하는 퍼포먼스, 주택 벽에 남기는 반전 문구, 마리우폴 사살을 상기시키는 스티커, 반전 슬로건이 새겨진 모자, 성매매 광고를 풍자한 피켓 등 이 모든 시위 행동 뒤에는 여성들이 있다. 자유 라디오 (Радио Свобода) 기자는 여성 행동가들을 만나, 평범하지 않은 시위의 배경에 대해 물었다. 


반전 그라피티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이리나 스타티브카는 한 주택의 입구에 "Z – залупа" (Z – 귀두)라는 문구를 적었다는 이유로 4월 23일 체포되었다. “나는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추적이 안되도록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옷을 입고, 얼굴도 감추었어요. 하지만 근처에 경비원이 있었던 거죠. 경비원이 저를 붙잡고 경찰을 불렀어요.” 이리나가 설명했다. 


그녀는 늦은 밤에 연행되었기 때문에 경찰서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경찰들은 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는지, 질서위반 행위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벌금 청구서를 주면서 저를 풀어주었어요." 다음날 그녀는 경찰서에 다시 불려 가 신문을 받았고, 경찰은 러시아 군 “모독”이라는 죄명으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행정법 20.3.3조) 질서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500 루블의 벌금형을 받았고, “모독”죄에 대해서는 아직 재판일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리나는 반전 그라피티를 그리면서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들키지 않고 작업을 마칠 수도 있길 바랐다. 그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20-2021년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부터이다. 이후 그녀는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독살 시도를 당했던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 행동을 포함한 여러 시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가족들이 있어요. 친척들이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죠.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정말 끔찍해요. 뉴스를 읽는 것마저 고통스러워요. 어떻게 이 상황에서 발언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리나가 말했다. 


그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곳곳에 초록색 리본을 걸어두는 것으로 반전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 전역에 Z라는 글자가 붙는 것을 보고 한 주택에 반전 문구를 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리나의 친구들은 그녀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리나는 본인이 체포된 사실을 바로 친구에게 알렸고, 친구는 이리나가 소환된 경찰서에 연락하기 위해 몇 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고 한다. 


“기분이 좋았어요. 친구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느꼈죠. 그보다 놀라운 일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었어요. 전쟁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반전 문구를 읽기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라, 의미있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친척들은 그녀의 시위에 대해 모르고 있다. “친척들은 몰랐으면 해요. 엄마는 이 전쟁이 정말 “특수 작전”이라고 믿고 있어요. 우크라이나에 파시스트들이 득실거린다고 생각하죠. 뿐만 아니라 저는 엄마로부터 파시스트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부여받았어요. 제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라나요."


“부차 (Буча)” 퍼포먼스 


크라스노다르 출신 올가 악세노바는 4월 10일 체포되었다. 그녀는 부차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내 중심가에서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누워 시위를 했다. 


“부차 학살 사진을 보고 바로 시위를 계획했어요. 이전부터 의사를 표명하고 싶었지만 적절한 형식을 찾지 못했어요. 거리에 손이 묶인 채로 누워있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자세라고 판단했어요." 올가가 말했다.


누워 얼굴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지나는 행인들의 반응을 보기 힘들었지만, 몇 가지 반응들을 떠올렸다. “지나가던 한 청년이 제가 괜찮은지 물었어요. 제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지나쳤죠. 또 한 행인은 제 모자를 잡아당기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리고 결국 그렇게 했죠.”


때 마침 경찰들이 길 건너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녀를 러시아 군 “모독”죄 혐의로 송치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행정법 20.3.3조) 


이리나와 같이 올가 역시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부모님들은 당연히 놀라셨죠. 하지만 정치적으로 저와 견해를 같이 하시기 때문에, 결국 제가 자랑스럽다고 하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쓰레기봉투와 장난감에 새겨진 반전 문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58세 베라 (가명)는 4월 초 상점에서 반전 문구 스티커가 붙은 장난감을 진열하다 체포되었다. 상점의 경비원이 장난감의 이상을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4월 중순에 베라는 러시아 군 모독죄로 3만 루블 벌금형을 받았다. (행정법 20.3.3조)


이 외에도 베라는 여러 형식의 반전 선언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전쟁 발발 첫 번째 주에는 자신의 모자에 “전쟁 반대”라는 문구를 새겨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거닐었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어요.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반전 모자를 쓰고 동네를 거닐던 그녀는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이어 쓰레기봉투에 반전 문구를 새겼다. “이것은 내가 만든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곳은 전쟁을 반대하는 나의 도시입니다”, “전쟁 반대. 깨끗한 세상을 위하여”와 같은 문구를 쓰레기 봉투에 적어 매일 환경 미화 공무원들을 위해 남겼다. 


“쓰레기봉투에 대한 아이디어에 누군가 동참해 주기를 바랐어요. 그렇게 되면 반전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도시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규모 동참은 없었어요." 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사회와 우리의 젊은이에 대해 크게 실망했어요. 그들은 전혀 동기가 없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죠. “특수 작전”을 반대한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러한 행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모든 집에, 모든 문에 “전쟁 반대”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베라는 반전 시위가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 보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상점의 가격표를 반전 스티커로 바꾸어 붙인 화가 사샤 스코칠렌코는 행정법이 아닌 형사법에 의해 러시아 군에 대한 “가짜 뉴스”생산 혐의가 인정된 바있다. (형사법 207.3)


“탄압의 정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어요. 이제 러시아에서 가능한 행동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벌써 58세이지만, 그렇다고 감옥에 가고 싶지는 않아요. 나라를 떠날 계획도 아직은 없어요. 결국 떠나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반전 시위를 계속하겠죠. 벨라루스를 보며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지금 반전 시위에 참여하면서 최소한 우리의 양심을 조금 깨끗하게 할 수는 있겠죠.” 베라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침묵 피켓”과 평화의 비둘기


모스크바의 화가 마리나 안토노바는 그러한 베라의 의견에 동의한다. 전쟁 첫날 그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배경으로 평화의 비둘기를 그렸다. 그림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기로 했다. “저로서는 사건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셈이었어요. 지금 상황에서 단체 시위에 참여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침묵 피켓 시위를 하기로 결정했죠.” 마리나가 설명했다.


전쟁 초기에 그녀는 대중교통에 그림을 들고 타는 시위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후 우울증이 찾아와 잠시 시위를 중단해야 했다. “우크라이나에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이 제게는 너무 고통스러워요. 몇 주 정도 잠적하고, 상태가 나아져 다시 ‘침묵 피켓’ 시위를 시작했어요. SNS에 “특수 작전”에 대한 포스팅을 하기도 하죠. 제 나름의 저항이죠. 내 포스트의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누군가 나를 고발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물론 두려워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성매매 광고 형태의 피켓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누쉬 빠니나 역시 시위 참여가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3월 2일 그녀는 반전 퍼포먼스를 펼쳤다. 센나야 광장에서 성매매 광고를 빗댄 피켓을 들고 시위 했다. 그녀는 바로 체포되었고, 러시아 군 모독죄로 4만 루블 벌금형을 받은데 이어, 공공질서를 방해하는 행사 진행을 이유로 10일동안 수감되었다. (행정법 20.3.3조, 행정법 20.2.2조)


시위 아이디어는 애초 그녀 친구의 것이었다. 그녀의 친구는 큰 글씨로 여성의 이름을 쓰고, 곁에 반전 문구를 쓰는 식의 광고 형태의 포스트를 고안했다. 예를 들어, “마샤 – 아들을 기다린다” 혹은 “키라 – 영원히 아빠를 만날 수 없다”


“크게 적힌 이름을 읽고 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을 구상했죠.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 들었어요. 그 기분은 제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죠. 제가 성매매 광고를 보고 있다는 느낌에서 실제 어떤 문제에 대한 광고인가 하는 생각에 느리게 다가가는 과정이었어요. 저는 결국 눈물을 흘렸죠.” 아누쉬가 당시를 떠올렸다.


그녀는 거리와 지하철역에 붙일 광고지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피켓을 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었다. 피켓 없이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연행된다면, 오래 기억될 피켓을 들고 시위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활동가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비정치적인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모두 포스터를 들고 시위를 했다면, 그 많은 메시지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판사까지도 판결문을 읽으며 제가 적었던 문구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어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저에 대한 유죄를 판결하면서 판사가 마치 기도문을 외듯 제 피켓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이마저도 역할을 했다고 봐요. 누군가는 이 판결문을 읽게 될 것이고, 어쩌면 누군가의 내면을 울려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 수 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가 덧붙였다. 포스터의 반대쪽에 그녀는 “우리는 순진해요”라고 적었다. 이 문장을 통해 아누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탄압이 자행되고 있음을 모르거나 우크라이나에서 어떠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아누쉬는 머리에 “몇 명?”이라고 적은 핏빛 끈을 묶고 있었다. 


“이 질문은 한 번에 여러 가지 맥락을 떠오르게 하죠. 나는 다소 임의적이고, 평범한 느낌의 최대한 쉬운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정권을 대변하는 이들은 답변 하기에 시간이 필요한 어려운 질문을 건네는데 익숙하죠. 하지만 제가 던지는 문제는 너무나 쉬워요. 저는 그들이 제 이 쉬운 질문 앞에서 여러 해석을 구상해 내며 똑똑한 척을 하지 않길 바라요.” 그녀가 설명했다. 깃털이 달린 그녀의 머리띠는 산자의 영혼을 죽은 자의 세계로 안내하는 고대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를 떠오르게 했다.


#우크라이나전쟁#러시아반전시위, #РадиоСвобода


https://www.svoboda.org/a/eto-ne-moy-musor-novye-formy-antivoennyh-protestov/31835489.html?fbclid=IwAR1JZJyH5WmvJQoafvID3rLFCIj4XDCULoXc6UacRzcyr5a_S3MAzLTO8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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