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의 인생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소아치과는 아이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과이다. 나만 보면 빽빽 울던 아이가 울먹이지만 치료를 받기도 하고 어느 날은 훌쩍 큰 형아가 되어 입을 쩍 벌려주기도 한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능글능글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더니 여드름이 쑹쑹 난 어느 날부터는 과묵한 청소년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는 커가고 그런 크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도 같이 성장한다.



유치는 수명이 명확한 치아다. 앞니는 6년 정도, 어금니는 10년 정도 사용하면 다음 치아인 영구치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그 빠지는 과정을 보면 때로는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음식을 씹기도, 발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유치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구치의 싹이 잘 자랄 때까지 그 위에서 영구치 싹을 잘 보호하고 영구치가 나올 자리를 잡아두기도 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치아가 올라오면 뿌리는 다 녹아버리고 치아 머리만 남은 채로 조용히 빠져버린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 영구치 세대로 전환이 된다.



간혹 고집스럽게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이 원인이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영구치가 유치 뿌리를 녹이지 못해 영구치가 방황하여 다른 쪽으로 방향이 휘거나 물주머니를 만드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생기면 가혹한 일을 당하는 쪽은 빠지지 못하는 유치이다. 마취를 하고 인정사정없이 유치는 빠짐을 당한다. 스스로 비키는 것보다 비켜짐을 당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 때의 빠지지 못한 유치는 그동안의 노고와 상관없이 장애물 취급을 당한다.


간혹 너무 오래 유치가 막고 서있는 경우 영구치는 방황을 하다가 나갈 힘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뽑히는 쪽은 영구치가 된다.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뼈 안에 있다가 뽑혀 버리는 영구치의 인생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의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상황은 변하고 인생은 변한다. 아이는 커서 청년이 되고, 청년은 나이가 들어간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자식으로 성장하다가 또 다른 자식의 부모가 되기도 한다.


유치의 인생을 보며 부모의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가 잘 자라서 자신의 기능을 할 때까지 내 품안에서 잘 보호하고 있다가 아이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싶을 때는 묵묵히 뒤로 물러나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부모가 너무 오래 고집스럽게 버티면 자식은 방황하다가 나가려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 때 부모가 뽑히든, 자식이 뽑히든 두 가지 상황 모두 비극이다.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또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나의 완강함으로 휘어지고 방황하고 있는 어린 청춘이 있지 않은지 말이다.

keyword
이전 05화울면 안돼. 왜 울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