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결핍인가.

청각장애인 부모의 선택

2001년 미국에서 한 청각장애인 커플이 자신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레즈비언이었으므로 출산을 위해 청각장애인(농인)의 정자를 기증받기로 했다. 여러가지 노력 끝에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남성에게 정자를 기증받는데 성공한다. 확실한 청각장애인 유전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 셈이다. 그런 다음 무사히 임신을 했고,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 고뱅을 낳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각지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장애를 고의적으로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그 커플은 청각장애가 치료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생각하였고, 오히려 청각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의 특권을 물려주고 싶었다고 하였다.


부모가 둘다 청각장애인(농인)으로서는 아이도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이라면 더 큰 교감을 나눌 수 있을 테고, 이는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청각장애는 아이가 살아가는 데 커다란 제약이며, 그로 인해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비난했다.


사람들의 비난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보다 열등하다는 전제 조건에서 나온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들을 수 있는 것에 비해 당연히 나쁠까? 김원영 변호사의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는 그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수화언어(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수어를 모르거나 제2외국어처럼 뒤늦게 배운 사람으로 구별될 수 있다. 후자는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것처럼 보청기 등을 사용해 소리를 증폭하고, 입술 읽기 훈련과 재활 수업 등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기른다. 그렇게 훈련하는 방식이다. 반면 어린 시절 수어를 최초의 언어로 배우는 청각장애인의 경우는 수어를 기초로 한 의사소통을 익힌다. 이들은 보통 수어를 쓰는 부모로부터 수어가 기준이 되는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한다. 우리가 한국어를 배우고 그 한국어를 바탕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수어를 먼저 배우고 수어를 바탕으로 다른 언어를 익히게 된다.


고뱅의 부모는 고뱅이 수어를 완벽하게 습득해서 수어를 제 1언어로 삼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수어를 제 1언어로 가지는 부분이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보다 장점이 있을까?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화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 수화를 다른 모든 언어나 정신활동과 뚜렷이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특징은 바로 공간을 언어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언어적 공간의 복잡성은 평범한 눈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압도적이라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 복잡한 공간적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보지도 못한다. ... 수화의 겉모습은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그토록 단순해 보였던 것이 사실은 엄청나게 복잡하며, 3차원적으로 서로에게 깃든 공간 패턴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수화를 사용하는 세 살짜리 아이라면 이 구조를 힘들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해독해낼 수 있다. ... 그렇다면 수화의 신경학적 기반은 무엇일까?.. 이 연구결과를 잘 생각해보면 놀라운 동시에 당연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선 신경학적인 차원에서 이 연구결과는 수화가 정말로 언어이며, 뇌도 수화를 언어로 제대로 대우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 수화는 언어로서 뇌의 좌반구에서 처리된다. 좌뇌는 생물학적으로 바로 이 기능을 위해 특화되어 있다. 수화가 공간적으로 조직되어 있는데도 좌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뇌에 일반적인 영역 구분과는 완전히 다른 '언어' 영역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해서 수화 사용자들은 공간을 표현하는 새롭고 굉장하고 복잡한 방식을 발전시킨다. 이는 수화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유사한 공간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공간이자 공식적인 공간이다."





이런 놀라운 올리버 색스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에 따지기에 앞서, 청각장애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화언어(수어)가 "결핍"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고, 일종의 "재능(talent)"를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고뱅 부모의 선택에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소리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의식에 기반된 월권행위 일수도 있지 않을까?



오랜 기간 우리나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장애"에 대한 시선은 "결핍"에 바탕을 두고, 그 결핍을 개선하거나 조절하여 "비장애인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장애를 일으키는 부분은 가능한 한 치료하고, 교정하여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훈련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듣지 못함으로서 배우게 되는 수화라는 언어가 천재들의 지능영역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그 "결핍"이 치료하고 교정할 필요가 있는 결핍이라고 볼 수 있을까?





치아에는 제 2소구치라고 일컬어지는 치아가 있다. 작은 어금니 중 하나인데 두번째 작은 어금니라 첫번째 작은 어금니와 기능이 겹친다. 그래서 가장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서 교정치료 시에 주로 발치의 대상이 되는 치아이다. 최근 들어 이 두번째 작은 어금니가 선천적으로 없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모든 치아가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선천적으로 치아가 없는 "결손"은 "장애" 또는 "질병"이다. 그런데, 턱이 작아서 없는 것이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오히려 치아가 다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꼬리가 없어지고 꼬리뼈 라는 흔적기관만 남은 것처럼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턱이 더 좁아진다면 아니 소구치가 2개씩 있었단 말이야? 하고 놀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물며 치아조차 이럴진데, 장애를 가진 타인의 삶을 잘못되었다 규정하고, 나만을 기준으로 "결핍"을 결정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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