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특성이라는 것은 없다.
대중매체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다루는 직업의 종사자로서 가끔은 화가 난다. 대중매체 속의 아이들은 철저히 성인의 편의대로 그려진다. 바쁜 부모를 둔 어린아이가 너무 의젓하게만 부모를 이해하는 경우도 있고, 매번 울고 떼쓰는 모습으로 나오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때로는 너무 이기적으로만 그려지고, 때로는 너무 이성적으로만 그려진다. 어른도 때로는 이타적인 모습,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세상 긍정적이었다가, 어떤 날은 지옥이라도 들어갈 것처럼 부정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감정에 충실하기도, 때로는 감정을 잘 다스리기도 한다.
내가 본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충동적이나 충동적이지만 않았고, 이기적이지만 이기적이기만 하지 않았다.
아이가 7살이 되도록 친구들과 무얼 나눈다던가, 베푸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외동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오롯한 관심과 집중을 받아서 나누는 것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까. 타인의 상황을 잘 이해 못하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젤리 등을 유치원 가방에 넣어주기도 하고 부모의 마음, 감정 등도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 때로는 화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음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젤리를 잘 나눠먹지 않고, 부모의 감정을 느끼는지 어쩌는지 잘 모르겠다.
한여름에 유치원 아이가 셔틀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사망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 다음 해 여름이었다. 아이가 매번 셔틀버스의 제일 뒷자리에 앉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 할머니가 앞자리가 비어 있길래 앞으로 앉으라 하셨다 한다. 아이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원래대로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고 한다. 아이에게 그날 저녁 물어봤다. 아이는 어른들이 부끄러워할만한 대답을 내어 놓았다.
“내가 앞자리에 먼저 앉아버리면 다른 친구가 힘들게 뒤로 가서 앉아야 하잖아. 먼저 탄 사람이 뒷자리부터 타야 다른 친구가 타기 편하지.”
젤리는 나눠먹기 싫어도, 늦게 타는 친구를 배려할 수 있는 것이 아이다. 아니 이런 모습이 사람의 특성이다. 우리나라 아이가 큰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다고 하면 진심으로 멋지다 생각하고 응원하면서도, 그 아이가 내 아이와 같은 학원을 다닌 아이라 하면 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때로는 대인배이기도, 때로는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이런 양가감정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아이도 다르지 않다. 아이라고 항상 순수하지도, 아이라고 항상 영악하지도 않다. 때로는 순수하기도, 때로는 영악하기도 하다. 사람이란 그렇다.
혜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방학 때마다 검진을 하는데, 어찌나 충치가 잘 생기는지 매 방학마다 혜나만 커서 오면 좋겠는데, 항상 충치도 키워서 온다. 양치를 잘 못하지도 않는데 혜나도 참 억울한 노릇이다. 오늘도 예약 장부 상에는 분명히 검진이었는데, 또 치료를 해야 한다. 방학이라도 바쁜 요즘 아이들이니, 진료가 많이 밀려있지 않으면 당일 치료를 해주는 편이다. 혜나가 받아야 하는 치료는 영구치 어금니의 충치를 제거하고 레진이라는 재료로 때우는 치료이다. 이 치료는 국소마취를 할 정도로 통증이 있는 치료는 아니지만 마취를 하지 않으면 충치를 제거할 때 시린 느낌이 난다. 국소마취를 하면 충치치료를 할 때 시린 느낌은 좀 없어지지만, 마취라는 아픈 행위를 견뎌야 한다.
먼저 매를 맞고 좀 편할래? 그냥 쭉 불편할래?인데 정말 아이들마다 선택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절대로 마취는 할 수 없다고 시린 쪽을 선택하겠다 하는 아이들도 있고, 짧고 굵게 가겠다며 마취를 선택하겠다는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 네 맘대로 하세요. 하는 아이도 있다. 혜나는 전자다. 마취를 하면 그래도 시린 느낌이 덜해지니까 마취를 하고 해 보자 해도 요지부동이다. “선생님, 저는 그 마취된 느낌이 너무 싫어요. 특히 마취 풀릴 때 그 간질간질함. 아윽. 최악이에요. 선생님. 참아볼게요. 빨리 해주세요.” 이럴 때는 할 수 없다. 그냥 가급적 빨리 충치를 제거하는 수밖에.
다음에 비슷한 학년의 민준이가 들어왔다. 역시나 비슷한 부위의 충치가 있어서 치료하기로 했다. 이 녀석은 또 완전히 반대다. 시린 것 싫단다. 잠깐 따끔히 훨씬 낫단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린다. 같은 치료에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두 아이를 보니, 역시나 똑같은 아이는 없다.
최근 교과서 등에 남녀의 전형화된 모습들, 예를 들어 엄마는 음식을 하고, 아빠는 회사에 다녀오는 등의 모습들을 수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매우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편부모 가정이 많아지고 있고, 1인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 엄마 아빠가 있는 가정의 형태가 정상적인 형태처럼 묘사되는 부분 역시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전형적인 모습의 아이에 대한 묘사도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착하다. 그렇지만 늘 착하지는 않다. 아이들은 아픈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싫어하는 통증의 종류는 다르다.
“어린이는 작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단순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