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왜?

글쓰기는 치유다

처음 글쓰기 모임을 하고 싶어서 첫인사를 나눌 때였다. 직업을 소개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진정한 나를 찾을려고 글쓰기를 하는 것인데 직업을 밝히지 않고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치과의사라고 하자 댓글에 "우와. 치과의사라니. 돈 잘 버시겠어요" 라는 글이 달렸다.

그 댓글을 보자마자 글이고 뭐고 당장 그만 두고 싶어졌다.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일단 첫째는 아마도 나는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치과의사라는 점. (현재 나는 치과의사인데 그것밖에 못벌어요? 하는 정도의 상황이다 ㅋ) 그 부분에 대해서 아닌 척 하지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둘째는 왜 치과의사가 글을 쓴다고 난리야? 라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치과의사인데 왜 저러고 살지? 라는 시선에 부딪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치과의사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계륵과 같았다. 치과의사라고 주목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또 치과의사라는 계급장을 떼는 것도 아쉬웠다. 똑같은 글을 써도 의사가 썼다고 하면 "의사치고 잘 쓰네?" 라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난 치과 관련 책은 쓰기 싫어요! 글로만 인정받고 싶어요. 하면서도 은근슬쩍 치과의사라는 것을 끼워 넣는 이중적인 행태였던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랬다. 힘들어서 빼꼼 어딘가에 문을 내밀었다가도 아니 치과의사가 대체 왜? 라는 반응을 만나면 그냥 “pretend”해버리고 싶었다. 아무 문제없는 척, 타인이 기대하는대로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살고 있는 커리어우먼 인체 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꾸 숨다보니 안의 염증은 점점 여물어갔다.




몸에 염증이 있다고 그 염증이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염증은 때로는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열이 난다거나 붓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진 날이었다. 늘 하던 엄마의 말이 그날따라 너무 힘들었다. 버럭 화를 냈다. 짜증을 냈다.


짜증과 화는 감정 표현의 가장 하수에 있는 표현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내는 화는 더 최악이다. 항상 그 끝은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화와 죄책감이 뒤섞여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숨어있던 고름이 성을 내고 있었다.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글을 썼다. 9살에 멈춰 있던 나에 대한 글이었다.



초2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아파트는 산 밑이어서 약수터가 있었고
그 약수터 물을 떠 와서 밥도 짓고 마시고 그랬다.

저녁이 되가는 무렵이었고 엄마는 동생을 보고 있고 물통을 두 개 주며 물을 떠 오라 했다.
자주 하던 심부름이었다.
물을 뜨고 아파트로 돌아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었다.
우리 집은 15층이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이 물이 있어야 저녁밥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물이 그득 담긴 물통 두 개를 끙끙대며 들고 15층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헥헥대는 나를 보더니 미련하게 그걸 들고 왔냐고 타박했다.

순간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물통을 밀어버렸다. 내가 끙끙대며 이고 지고 올라온 물은...
그냥 그렇게 다 쏟아져버렸다....

그리고 난 지금 어른이다..
그런데 아직도 종종 무언가를 이고 지고 하며 끙끙대다가 어이없이 확 놓아버리고 만다..
참아온 노력이 무색하게 그렇게 엎질러버린다,

다시 돌아가 본다.
30대 후반의 엄마가 된 내가 9살 어린 나에게 가본다.

헥헥대며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올라
그래도 물통에 물이 샐까 소중히 안고 온 어린 나를
꼭 안아준다..

엄마가 물 없으면 밥 못 지을까봐 힘들게 들고 올라왔구나.
장하네 내 딸~ 고생했어 고마워~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지금의 내가 상처 받은 9살 나에게 해준다.
그리고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참느라 고생했어 수고했어.
너무 짐이 무거우면 두고 와도 돼. 도와달라 해도 돼..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글을 써 내려가니 시원했다. 그리고 무언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감정의 고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능력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 현재 살고 있는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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