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시대, 생각을 공유한
또래 작가의 책을 고른다
여러 나이가 섞인 집단이 있으면 결국 비슷한 또래끼리 어울리게 된다. 80년대생인 내가 아무리 90년대생에 끼여 놀아보려고 해도 ‘룰라’의 3!4!를 모르는 애들과 깊게 사귈수 없다. 1933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아무리 훌륭해도 198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나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공감하긴 쉽지 않다.책도 마찬가지. 책을 처음 고른다면, 나와 나이가 비슷한 작가의 책을 고르는 게 좋다.
작가의 나이는 대부분 겉표지를 펼치면 앞 날개부분에 쓰여있다. “00작가는 1900년 00에서 태어났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최은영(84), 정문정(86), 장류진(86), 박상영(88) 작가의 글을 즐겨본다. 특히 박상영 작가는 또래기도 하지만 대학동문이기도 해서 그의 책을 보거나 인터뷰를 들으면 옛날 추억이 많이 떠오른다. 글의 묘사와 필력도 수려하지만 등장하는 배경과 그것에 대한 박상영 작가의 생각이 내 생각과도 거의 맞아 떨어진다.
2007년, 나는 스무살이었으며, 종로구 명륜동의 반지하 방에서 대학 신입생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부친의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버렷고, 보증금을 낼 여력이 없었던 내게 허용된 주거공가은 월 35만원에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반지하 하숙방이 전부였다.… 혼자 산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살때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는 것.
- 박상영,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별 내용은 아니지만 나도 그즈음 그 나이였고 종로구 명륜동 자취방에서 살았고 그 방도 35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나도 혼자 산지 두달 채 되지 않아 수돗물이 공짜가 아닌 걸 깨달았다. 에이, 그렇게 일치하는 건 특별한 케이스 아니야? 라고 물을 수 있지만 또 못 찾을 법은 없다. 작가보다 출간되는 책이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고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같은 학교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한 나이, 지역 출신 작가들이 존재한다.
박상영 작가의 글을 보며 ‘맞아,맞아. 그랬지’하며 낄낄댔다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쓴 정문정 작가 글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동년배인 정문정 작가가 가정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겪는 일들이 나의 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 앞서 나가는 대신 ‘포기’를 강요받고 균형을 말하면 ‘페미니스트’ 소리를 듣는 환경. 언젠가 만나게 되면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작가의 꿈을 일찍 이루고 성공가도를 달려가는 그들에게 질투도 조금 느끼지만 나의 시대를 대표해서 멋진 서사를 남겨줄 수 있는 작가들이 있다는 데 든든함이 더 크다.
인간관계는 갈수록 피곤해진다. 가면 갈수록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람이 늘어나니 사고가 터지고 감정소모가 심하다. 게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이와 엮이는 사람들도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달린다. 모든 연을 끊어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땐 또래 친구 작가들을 찾아간다. 그들은 말없이 잠잠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실 작가들이 말을 하고 나는 듣는 입장이지만 책에 깊게 빠지면 그 관계는 종종 전복되기도 한다. 좋은 작가 친구를 만드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