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대장님을 골라라
책을 처음 고른다면 '대장님'을 찾아라
단, 오픈된 데이터는 없으니 서점 임장을 가야한다
부동산에서 이 지역 대장으로 불리는 단지가 있고, 주식에서도 지수를 이끄는 대장주가 있다. 그런데 책은? 책은 공식적인 판매데이터를 알 수 없다. 각각의 출판사들이 자신들이 판매하는 도서의 판매량을 알지만 무슨 연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잘 모르겠으니 일단 베스트셀러 코너로 가본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도 사실상 베스트‘셀러’가 아닌 경우가 많다. 당시 마케팅을 ‘베스트’로 하고 있는 도서일 확률이 높다.
업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얼마나 믿을만할까. 한 전문가가 10만 부 이상 팔렸을 거라며 의미를 부여한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를 만나 대화한 적이 있다. “그 책 10만 부 넘게 팔렸다면서요? 정말 대단하네요.” 내 말에 대표는 황당해 했다. “누가 그래요? 그거 1만 부 나갔는데.” 내 책 판매량이나 나의 수입에 대해 어느 출판평론가가 한 말이 하도 틀려서 기가 막힌 적도 있다. 기초적인 데이터 파악이 이 지경인데 분석이고 대책이 과연 의미가 있나 싶다. - 장강명 칼럼 「채널예스 」
책과 비슷한 인쇄매체인 신문은 ABC제도 기준으로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다. ABC제도란 Audit Bureau of Certification(신문·잡지·웹사이트 등 매체량 공사기구)의 약자로 신문, 잡지, 뉴미디어 등 매체사에서 자발적으로 제출한 부수 및 수용자 크기를 표준화된 기준위에서 객관적인 방법으로 실사, 확인하여 이를 공개하는 제도다. 책은 이런 제도가 없다. 아마도 판매량 공개가 출판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일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팔린’ 책을 파악해야할까?
바로 ‘쇄 수’를 확인하는 거다. 보통 책의 앞 표지 바로 뒷장이나 뒷 표지 바로 앞장에 해당 도서가 몇 쇄인지 쓰여있다. 쇄(刷)는 지금까지 해당도서가 인쇄된 횟수라고 보면 된다. 한번 인쇄된 책은 초판1쇄, 두 번 인쇄된 책은 2쇄, 5번 인쇄된 책은 5쇄라고 쓰여있다. 책 한권을 인쇄하기 위해서는 최소주문량(Minimum Order Quantity)이 평균적으로 2천부 정도 되니 인쇄수에 2천부를 곱하면 대략 팔린 수량이라고 보면 된다.
막상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서 보면 인쇄수가 많지 않은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의 위치는 편의점처럼 마케팅의 논리가 적용된다. 어느 정도 판매량이 받쳐주긴 해야겠지만 판매량보다는 얼마나 출판사가 투자를 해서 광고를 하느냐 여부가 더 결정적이다. 그래서 아직 책에 대한 취향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인쇄수를 보고 고르는 게 안전하다. 『82년생 김지영』,『아몬드』 등 거의 100쇄를 찍은 초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5쇄 이상은 찍은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종종 책추천을 해달라는 말에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고르세요’ 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조언은 이제 막 책을 읽으려는 책린이에게 적용되긴 좀 위험하다. 일단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골랐다면 그 책이 신간일 확률이 높고 출판사에서 많이 공을 들인 책일 확률이 높긴 하다. 좋은 책에 걸리면 다행이지만,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같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책들에게도 낚이기 좋다. 아파트 층간소음에 시달리면 주택으로 돌아가고 싶듯이, 내용물이 부실한 책들에게 낚이면 영영 책과 멀어져버린다.
부디, 책을 고를 때는 기본적으로 인쇄수를 꼭 확인하길 권한다. (인쇄수는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가능하다. 서점 임장가듯 가볍게 방문해보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