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은 떡볶이를 보면서 든 관계에 대한 단상
나는 고추장이요, 타인은 떡이다
떡볶이를 맛있게 바로 만들어내기엔
세상에 떡의 종류가 너무 많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온 세계가 어수선할 때 하와이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였던지라 몇몇 없는 한국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안타깝게도 불꽃처럼 치솟는 환율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나는 하와이로 출발하기 전부터 학비, 용돈 등 모든 돈을 환전해서 와서 큰 타격은 없었다. 그래도 심리적으로는 쪼그라든 상태였다. (돈을 너무 안 써서 그런지 한국에 돌아갈 때쯤에는 돈이 남아서 차익(?)을 보기도 했다.)
몇 없는 한국인 친구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자 겉돌던 우울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미국 10대들과 관계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나마 정서적으로 통하는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화를 억누르고 지내왔는데 그들조차 사라지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엇보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 가서 한국인 친구들과 회포를 풀곤 했는데, 그 시간이 사라지니 스트레스가 급속도로 쌓여갔다..
한국에 돌아가서 먹을 음식들을 리스트업 하며 정신수양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학교 앞 사무실에서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려 다음 학기를 준비하려는 여학생 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고 그들의 입학 수속을 도와줬다.
그들은 나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무언가를 내밀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온 얼굴의 구멍이 열렸다. "꺅" 소리를 내며 환호했다. 그것은 바로 튜브 고추장. 100g도 채 안될 것 같은 기내식 고추장 튜브를 본 순간 한 가지 단어만 떠올랐다. 떡볶이. 떡볶이! 빨간 국물에 광택을 내며 쫄깃하게 미끄러지는 떡볶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일본 식자재 마트로 달려갔다. 그나마 떡을 파는 곳은 거기였다. 마트 몇 바퀴를 도니 지우개처럼 생긴 키리모찌가 보였다. 그래, 이거야!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설렘 가득이었다. 냄새가 나면 불쾌해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이걸 안 먹으면 더 이상 동방예의지국의 일원으로서 매너를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간단히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공용 부엌에 들어가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주 쓰던 웍을 꺼냈다. 웍 안에 물을 담고 튜브 고추장을 짜서 살살 풀어냈다. 물이 끓는 동안 도마에 키리모찌를 떡볶이 모양으로 길게 잘라냈다. 국물 안에서 물고기처럼 유려하게 헤엄치고 다닐 떡을 생각하니 흥분됐다. 드디어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고 경쾌한 손목 스냅으로 잘린 떡을 웍 안에 넣었다.
주걱으로 떡과 빨간 국물을 살살 저으며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물 안에서 떡들이 물고기마냥 파닥거려야 하는데 점점 형체가 이상해졌다. 아니, 떡들이 국물 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새빨갛고 칼칼했던 국물은 연한 주황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재빨리 불을 끄고 충격적인 광경을 바라봤다. 눈에 보이는 건 쫄깃한 떡볶이가 아니라 흐물한 떡 죽이었다. 고추장 + 떡을 넣으면 떡볶이가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고추장 + 떡 = 떡볶이 공식은 틀렸다.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숟가락으로 맛을 보니 그래도 떡과 고추장의 맛이 났다. 지금 같으면 절대 먹지 않을 대참사 비주얼이지만, 그때는 너무 소중했던 고추장으로 만든 음식이라 그릇에 조심히 옮겨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앉아 멍하니 그릇을 바라보고 있는데, 미국인 룸메이트가 불편한 기색을 풍기며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터졌다. 떡볶이 하나 먹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런 꼴이 됐는지. 나는 왜 대체되는 게 하나도 없는지. 평생 인생이 이렇게 재수 없게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훔치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 사단에 대한 답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일본식 키리모찌는 찹쌀로 만들어지고 한국의 떡볶이 떡은 멥쌀로 만들어진다. 분자구조가 다른 찹쌀과 멥쌀은 물과 만났을 때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찹쌀로 만든 떡은 물에 넣으면 녹고, 맵쌀은 형태가 유지가 된다. 똑같은 떡인 줄 알았는데 이름만 같았지 태생부터 달랐다.
하와이에서 돌아온 지 13년이 넘어가지만, 사람과 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이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나는 고추장이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떡이다. 그 사람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맵쌀로 만든 매끈한 떡볶이 떡과 만나야하지만, 실제 나와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완벽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몇백 개가 넘는 떡의 종류처럼 사람도 겉만 같은 사람이지 성향이 아주 세세하고 디테일하게 다르다. 같은 배경,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소한 오해가 생겨 틀어지거나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인데 잘 맞는 경우도 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말랑하고 쫄깃한 떡볶이 떡이 들어오길 기대하지만 죽이 되는 모찌나 팥이 잔뜩 든 바람떡 같은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요즘이다. 그래서 그런지 13년 전 망해버린 떡죽이 생각난다. 한 숟갈도 뜨지 못한 채 그릇을 안고 엉엉 울었던 그날. 설로인이나 샤토브리앙 같은 고급 음식도 아니고 고작 고추장 물에 떡을 볶은 떡볶이 정도의 관계를 원하는 건데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건지.
그럼에도 스쳐가는 떡들을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요즘 힘든 시기인 건 맞지만, 이 시간을 견디면서 가성비가 가장 높은 건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든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주변의 떡들(사람들)에게 베풀고 품어주면 완벽한 방식은 아니더라도 어려운 순간에 기대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들고 나타나 준다. 혼자 했으면 몇 주 몇 달이 걸렸을 일이 몇몇과 협업으로 삽시간에 해결되기도 한다.
게다가 떡볶이는 어찌 됐든 무조건 맛있지 않은가.
이 세상의 많은 떡들과 조화롭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