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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Sep 10. 2022

트라우마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어도




매일  눈을 감기 위해 10  되는 수면제를 꺼내 먹고 잠이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지쳐 독한 수면제도 들지 않고 날을 새다 겨우 눈을 억지로 감아  적도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먹어온 수면제는 면역도 되지 않으며  먹고  수는 없다. 수면제를 먹지 않고   없듯 불안제와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는 하루를 버티거나 견딜  없다. 모든 우울증 환우들이 비슷하겠지만, 나의 우울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게으름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지나온 시간 속에서 정말 힘들고 아파서, 마음이 미치도록 괴롭기에 나에게 잠시 걸린 빨간불에 불가하다. 나에 대해, 내가 지나왔던 시간  고통에 대해 공감할  없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생각하고 조언한다.


“약 그거, 안 먹어도 되는데 네가 괜히 약 먹는 거야! 다 의지가 약해서 그래. 좀만 더 움직이고! 덜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면 금방 나아.”


우울과 우울증은 너무나 다른 이야기다. 우울은 감정이고 우울증은 질병이다. 우울증이 앓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사고력이 180 바뀌고  세포의 움직임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울증에도 앓게 된 이유가 정말 다양하고,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상이 제각각이다. 나도 움직이고 밥도  먹어야 하고 좋은 것만 보며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아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전기코드가 빠진 가전이다.  하는  아니라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아예   없다.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이 실망스럽고 때론 화가  때도 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원망과 자책을 하는데,  부정적인 마음이  갉아먹어 때론 치료에 방해가  때가 있다. 그러니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우울증 가지고 누군가에게 지적하거나 원하지 않는 조언 또는 잔소리는 그냥 폭력이다. 걱정돼서 말했다고? 나름대로 위로였다고? 그래도 폭력되기도 한다.  남의  하나에  좌절하고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심한 우울을 앓고 자책하게 만드는 폭력.


나에게 있어 약 먹는 일은 매우 귀찮고 때론 짜증 나지만 그럼에도 먹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 쓰는 것과 같다. 침대에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물을 챙기고 약을 먹느다는 건 우울증 환우들 모두가 칭찬받야 할 일이다. 약 안 먹고 더 멀리 뱅뱅 돌아 도착하는 것보다 최대한 빨리 더 나아지기 위해, 더 빨리 행복할 수 있도록 온 전력을 다 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내 우울증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조언해줄 필요는 없다. 때가 되면 알아서 나와 주치의 의사 선생님이 적절할 때 줄이자고 할 테니까.


지금은 엄마와 떨어져 살고, 내 주소를 알 수 없고, 내 연락처를 꽁꽁 숨겨 연락도 주고받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가 준 트라우마 안에서 아파하며 살아간다. 새아빠가 내 마음에 남긴 깊은 상처 때문에 어떤 날은 괜찮다가도, 그때 그 일들이 꿈에 나타나 트라우마 재경험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나는 살았다고 주문을 걸어 위로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내 우울은 언제 나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안정적으로 나에게 맞는 약을 먹은 지 4년, 트라우마로 인한 해리장애 인지 치료가 끝난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트라우마 그늘 아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시작된 신체화로 아프다. 가끔은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 완치됐음에도 해리 증상이 다시 나타나 또 저 멀리서 자해하는 법을 알려주고 날 미치게 한다.


숨 쉬고, 웃고, 울고 작고 사소한 전부가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날 미치게 한다. 내가 웃다가 갑자기 내 모습이 비친 화면을 보며 왜 웃냐고, 너는 불행해야 한다는 말이 뇌에서 울릴 때 나는 순간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내가 순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날 괴롭게 한다. 고작 그 작은 목소리 하나에 일주일, 한 달간의 감정이 뒤집히고 엎어진다. 나중에 상담을 하면서 이게 진짜 어떤 목소리인지 알아보면 어릴 적 엄마가 미워하고 괴롭히면서 나를 학대할 때마다 했던 말들이다. 크고 작고, 위험하거나 사소한 일에 내가 휘말렸을 때 상담을 하면 상담사는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았냐며 일부로 지웠던 기억을 끄집어내 결국 트라우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어릴 때 기억은 정말 많은 것에 영향을 주고 지금 나에게 놓인 상황과 관련성이 높으며 평생 간다.


“다음 상담 땐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해요.”


이 말이 제일 무섭고 고통스럽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회피하고 싶어 그만둘까 싶다. 하지만, 난 다시 약속한 그 시간에 그 트라우마와 마주하려 상담을 간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어릴 적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고, 나만 그때의 ‘나’를 다독여줄 수 있으니까. 나에게 상담은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든 바다와 같다. 트라우마 재경험 또는 간접경험으로 정신적 고통이 심해 죽을 수 있다고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만, 결과적으론 바다 깊은 곳에서 숨을 참고 묶여있던 과거의 나를 꺼내 바다 위로 올라와 새로운 나와 마주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 테니까. 매일 트라우마와 싸우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큰 아픔으로 찾아와도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찾아가고 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들을 따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대로 움직인다. 어릴 적 당연히 누려야 했던 것,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아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늦은 만큼 배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 내 권리를 주장할 권리와 힘을 나 멋대로 알고 배우고 써먹을 테니 내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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