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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Sep 08. 2022

이름이 새겨진 인감도장





우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밥 먹는 일은 특별한 행사처럼 느껴졌고,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우울과 슬픔, 그리고 미어지는 심정을 회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잠으로 도피, 회피하려는 마음은 역시 한계가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몸을 잔뜩 웅크려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장례식 기준으로 아빠의 49제가 고작 10여 일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49제가 지나면 금방 아빠 생신이라는 사실이 마음 미어져 눈물을 참으려 할수록, 내 감정이 우울로 넘쳐 오열하며 공황발작까지 일으켰다. 이쯤 되니 내가 우울해서 아빠 핑계를 되는 것인지 정말 아빠가 그렇게 비참하기 짝 없는 죽음이 안쓰러워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빠를 이젠 정말 기회가 없다 또는, 아빠의 유골함을 마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날 이리도 비참하게 만드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고 또 울면서, 목소리가 안 나올 만큼 울다 약 기운과 지침으로 잠에 들었다.


안개가 자욱한 널찍한 강가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보였다. 저 넓은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침울한 느낌까지 받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건너도 돼? 아냐, 건너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건너고 싶어.


계속 생각에 빠져 고민하다 하얀 소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아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욱한 안개로 아빠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그냥 봐도 우리 아빠,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빠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꿈에서 만난 내 아빠는 들던 그대로 키도 크고 사진처럼 잘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개 사이로 나타난 아빠를 보자 나는 하염없이 고갤 떨구고 울고 또 울었다. 아무런 말 없이 엉엉 목 놓아 우는 내게 아빠는 손바닥을 내밀어 보라더니 내 손에 이름이 적힌 아주 예쁘고 특별한 인감도장 하나 꼬옥 쥐어주고 다른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올려주며 다독여주셨다.


꿈이었지만, 아빠가 쥐어준 것들을 보며 아이처럼 마음을 드러내고 진심을 다해 내 슬픔과 그리움이 쌓였던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자 아빠는 다 안다는 듯 계속 괜찮다며 내 울음소리를 한참 동안 들어줬다. 떠나기 전 신신당부하셨다.


“울지 마, 가장 중요한 것들과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고 살아, 알았지?”


한 번에 어떤 뜻으로 하신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해, 스스로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나’라는 말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알아들었다. 고갤 끄덕이며 아빠에게 알겠다고, 그렇게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더 약속했다. 이 말을 하고 아빠는 저 넓은 강을 건너가면서, 안갯속으로 사라지셨다. 사라진 자리에 고모의 모습이 보였다. 고모가 웃으며 진정시키고자 날 꽈악 안아 토닥여주는 것으로 눈이 떠졌다. 눈 떠보니 내 방, 침대 위에서 나는 베개가 젖도록 울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벽이고, 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하던 할아버지는 내 꿈에 잘 나타나지 않았는데 아빠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나타나 손에 쥐어준 인감도장과 내가 좋아할 것들을 쥐어주고 떠났다니 너무나 슬펐다. 이 꿈을 끝으로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또다시 자지러지게 울고 또 울며 눈을 감았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고 내 슬픔은 가라앉을 생각하지 않아 미치도록 우울했다. 처음엔 아빠가 내 꿈에 나와서 슬펐지만 차분히 꿈에서 아빠의 말과 아빠가 준 인감도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니 마냥 우울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개명 후 인감도장이 없었다. 동생이 아기 때 탯줄로 인감도장을 만들겠다고 그들이 난리 치면서 동생 꺼 하나 만들다 내 탯줄로 된 인감도장 추가해서 만들었던 것 외에는 지금의 이름이 새겨진 인감도장이 없었다. 만들려 했으나 엄두가 안 나 만들지 못했는데 비록 꿈이었지만, 어떻게 알고 아빠가 내 손에 쥐어줬을까. 꿈속에서 본 내 이름이 박힌 인감도장은 정말 예쁘고 특별했다. 아빠가 줬기에 특별하기도 했지만, 정말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만든 인감도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떠나간 자리에 고모가 대신 안아주며 토닥여준 것도 나에겐 큰 의미처럼 느껴졌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니 고모에게 안부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 종일 고민하다 고모에게 아빠 이야기는 빼고 문자를 남겼다.

원래는 고모가 일을 많이 하고 계셔서 대부분 다음날 혹은 그 후에 연락이 오는데 그날따라 9시에 전화가 왔다. 안부를 나누며 이야기하다 아빠가 꿈에 나왔다는 말을 결국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빠가 떠난 자리에 고모가 있었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나는 이 이야기를 상담시간에 꺼내 상담을 했다. 상담사는 떠나기 전 아빠가 찾아왔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내가 하도 아빠를 생각하고 그리워해서 꿈에 나온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인감도장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한 번도 만든 적 없다는 대답 하자, 꿈이지만 아빠는 날 찾아와 도장을 주고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하고 떠나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때는 정말 그런 걸까 싶으면서도 어떻게 알고 인감도장을 주셨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믿기로 했다. 49제가 지나고 그 꿈 이후로 아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하루가 바빠 아빠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마음이 아려온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아빠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다지곤 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뱃속에 생긴 나와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사업을 시작했던 아빠.


엄마의 괴롭힘과 행패, 의부증으로 고생하다 주위 사람에게 손해 보는 계약에도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엄마 때문에 빈손으로 서울로 떠나 홀로 그 어두운 곳에서 살다 돌아가신 내 아빠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거나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빠가 끝까지 최선을 다 했다는 것과 나를 정말 사랑했던 첫 남자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아빠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겠노라, 더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겠다 유골함을 들고 가는 짧은 순간 동안 다짐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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