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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Sep 12. 2022

나는 정말 겁쟁이일지도 몰라

나는 ‘안녕, 나의 파도’ 쓰며 많은 트라우마와 아픔을 이야기했고 어려움도 꺼냈다. 아빠로 인해 달라진 삶까지 적고 나서야 ‘저는 학대 피해자 입니다’ 제목으로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고 멋진 사람이라고 하면서 글을 쓴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내게 글을 보여주라고 하지만 무섭고 두려움이 밀려온다.


꽁꽁 숨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삶도 있고 이렇게 아프다고 그러니 한 번쯤은 누군가 이 이야기를 봐서 생각을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에 쓰고 봐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했고 댓글 달아주신 것까지 정말 감사한 것들 투성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한 후 연락을 받고 응원까지 받으면서 나의 삶이 모두 달라지게 한 계기였다. 쓴 글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남이, 나를 알게 된 사람이 내 글을 읽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다.


학대 피해자라고 하면 원하지도 않는, 필요 없는 동정을 받을까 겁났고 내게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이 생길까 겁이 났다. 추석 당일에 고모네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고모와 사촌오빠는 내가 쓴 글을 꼭 알려달라고 했는데 대답해놓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나의 두려움이었다.


오빠는, 고모는 아마 나의 아픔에 대해 적은 글을 보며 걱정하겠지. 혹시나 그들(나를 학대한 부모)이 알게 되면 어쩌려고 그랬냐는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안 좋은 말도 들을 수 있지. 그게 싫었다.


오히려 내 예상과 다르게 그런 말보다 아픔에 대해 알게 된 고모와 오빠가 더 이상 내게 연애나 결혼 등 강요하는 것이 줄어들 수도 있고 또는 이젠 더 이상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닐까 봐 두렵고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애초부터 나는 글을 쓸 때, 나의 아픔을 봐주세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학대받아서 원인도 알 수 없고 아픔의 척도, 정도도 심한 아픈 몸으로, 트라우마라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할 내 삶은 어쩔 수 없는 부분과 내가 해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 대상이 가장 크게는 ‘나’ 자신이 먼저였고,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 다음이었고, 그 마지막이 학대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글을 시작할 때부터 내 글을 보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가정으로 시작하고 댓글이나 구독은 바라지도 않았던 부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브런치 북까지 만들었지만 북으로 만들려고 하면서부터 나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날 찾아낼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떤 단어로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여러 가지가 한 번에 밀려왔고 그 중 과한 상상일 수 있지만 내 이야기로 고정관념이 생기면 어쩌지 그런 생각도 있었고 그게 젤 무서운 부분이다.


최근 들어 집에만 있는 생활을 끝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뭐하고 계세요? 또는 어떤 일 하세요? 물어보는 분들에게서 나는 빈 껍질만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대단하지 않은 ‘나’라서 그게 이유가 아닌, 글로 쓴 내 시간들을 보고 있을까 봐.. 여러 사람들과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지만 모두가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최악의 상황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게 말해줘서 고맙다 혹은 앞으로도 그렇게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계속 글을 쓰면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말해주신다. 그 말을 듣고서야 잔뜩 웅크려진 몸을 피고 긴장을 놓는다.


내가 정말 겁쟁이라고 느낀 일화가 있다. 연애, 결혼 등의 단어를 보면 나는 경직되고 무섭다. 마음이 넓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만약 내가 그렇게도 아프고 깊은 상처라는 트라우마 속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면 이렇게 이해해줄 수 있고 마음이 넓은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생각할 때마다 겁이 덜컥 나 그런 생각한 내가 바보처럼 아니 안 되는 것을 억지 부리는 아이처럼 느껴지고 겨우겨우 열어둔 마음을 작은 말 하나로 닫힐까 먼저 걱정하고 있더라. 연애를 하면 말은 해야겠지.., 숨길 순 없을 거야, 나는 숨기는 걸 원치 않아. 하지만……., 너무나 아프고 무서워.


나도..,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도 누군가에게 이제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


이 마음속 말들이 떠오르면 나는 여지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마음의 내 간절함은 나만 안다. 알지만 난 겁부터 덜컥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백지상태가 되고 나서 결국 포기하고 끝낸다. 많은 시간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내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극복까진 아니어도 트라우마와 타협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내 모습을 남기고 싶다. 사랑하는 내 모습은 상상이 될 때도 있지만, 이런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나지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만 같다.


나도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 멋진 사랑을 했고 하고 있다고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이야기한 이곳에서, 말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꼭, 자랑… 하고 싶다.



내가 가진 성 트라우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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