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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l 17. 2024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인간애

-영화《타인의 삶》의 경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에게 독일은 분단체제의 극복과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상흔의 치유를 위해 중요한 참조가 된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영화《타인의 삶》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의 역사를 배경으로 억압적 국가기구의 영향 아래 있었던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1984년 11월 베를린-호엔쇤하우젠 슈타지 감옥’이라는 문구를 통해 영화의 시간 및 공간적 배경을 밝히면서 한 명의 슈타지 요원과 평상복 차림의 왜소한 한 남성(수감번호 Nr, 227)의 뒷모습을 나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비밀경찰 ‘비즐러’는 슈타지의 유능한 감시자다. 그는 취조하면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을 통제하면서 의도한 목표를 이루는 전형적인 비밀경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슈타지이면서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업무수행을 위해 무엇보다 증오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심문할 때 여러분은 사회주의의 적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증오하는 걸 절대 잊지 마세요.”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에 입각해 자신의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비즐러는 친구이자 상관인 ‘그루비츠’ 중령의 권유로 공연 중인 연극 극장에 함께 가는데 거기서 동독의 유명 작가 ‘드라이만’과 배우이자 드라이만의 연인 ‘크리스타’를 보게 된다. 비즐러는 망원경으로 그를 관찰하며 그의 사상적 불온함을 직감한다. 극장에는 문화부 장관 ‘헴프’가 와있었고 그루비츠는 헴프 장관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드라이만을 의심하는 헴프는 그루비츠에게 승진을 미끼로 드라이만을 감시하게 만들고, 그 일을 비즐러가 떠맡게 된다. 실상은 헴프 장관은 드라이만의 연인 크리스타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드라이만의 꼬투리를 잡아 크리스타를 차지하려고 한다. 비즐러는 작가인 드라이만을 겨냥한 ‘개인통제작전’을 직접 지휘하겠노라 자청하면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드라이만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비즐러는 정확하고 철저한 성격의 슈타지 요원으로 사사로운 감정이나 사생활과는 무관한 인물로 그려진다. 감시와 도청으로 이어지는 기계적인 업무 외에 개인적 만족이나 안위에 해당하는 자신만의 세계는 그에게 부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감시하는 대상인 예술가들의 일상과 그들의 열정적인 세계는 억눌려있던 비즐러의 감성을 흔들어 깨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칼날같이 날카롭고 건조했던 비즐러의 눈빛은 타인의 삶을 통해 문학과 예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같은 건물에 사는 다수의 슈타지 요원을 상대하는 창녀를 부르지만 능수능란한 그녀와 달리 비즐러는 경직되어 있고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유악해 보인다. 그녀에게서 얻고자 했던 친밀한 감정은 증발하고 만다. 그가 드라이만의 서재에서 몰래 가져온 ‘브레이트’의 시집을 읽으면서 그의 표정은 기쁨으로 변한다.

    “자두나무 아래에서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을 품에 안았다.”는 브레히트의 시는 창녀와 잠시 있었던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 상태(허무와 상실감)와 우연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제를 위한 감시자 기계에서 감정을 느끼는 인간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경우 임철우 소설「붉은 방」과 영화《1987》에 등장하는 고문기술자(실제 이근안 경감)의 반성없는 태도와 비교하면, 독일과 한국의 폭력적인 역사 청산과 관련한 상반된 태도와 연결되어 자못 흥미롭다. 한국의 고문기술자는 빨갱이들은 죽여도 아무 상관없는 비인간으로 보고, 다시 그와 같은 임무가 주어진다면 또 같은 일(고문)을 할 것이라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으니까. 

    비즐러가 예술가들의 세계에 더욱 동화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드라이만이 동료의 자살 소식을 듣고 비참한 마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곡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를 듣고 난 후이다. 그는 선율을 통해 전해오는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슈타지의 이미지는 물론 항상 냉철하게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비밀경찰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드라이만과 그의 동료들의 불온한 일에 눈감는 것은 물론 문화부장관 헴프의 옳지 못한 권력의 행사에도 저항한다. 권력욕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헴프는 배우이자 드라이만의 연인 ‘크리스타’를 성폭행하고 그녀를 계속하여 지배하려 하지만 드라이만에게 그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거나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 술집에서 크리스타를 설득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 그런 탓에 결국 그 자신이 희생을 감수하지만. 

    영화《타인의 삶》은 독일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것이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염원과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억압과 통제로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인간관계 혹은 인간다움의 상실이 동독 사회의 변화를 이끈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결국 어떤 거창한 이데올로기 대신 인간 본연에 대한 자유로움의 보장 혹은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진정한 힘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이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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