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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14. 2017

프리랜서의 출근에 대하여

"프리랜서는 프리하죠?"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주다. 간만에 월차를 냈다며 밑도 끝도 없이 당장 나오라는 친구도 있다. 일해야 한다고 대답하면 섭섭해한다. "집에 있으면서 왜 못 나와? 내가 거기로 갈까?"라고 묻는다. 내가 내 집에서 먹고 자며 일도 하는 것은 맞지만 나에게도 출근과 퇴근이 있다는 것, 자체 월차든 반차든 쓰려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326948273476번쯤 얘기한 것 같은데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혹은 자신의 월차가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고 짜릿한 나머지 나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하찮게 느껴졌거나.


한 번은 주말에 친구를 초대하면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는데 몇 달 후 예고 없이 갑자기 삑삑삑삑 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나를 기함하게 만든 적도 있다. 나 오늘 회사 안 간다, 가 이유였다. 그리고는 마감 중인 내 등 뒤에서 TV를 보며 연신 자신의 상사가, 동료가, 일이 얼마나 짜증 나고 재수 없고 힘든지에 대해 투덜댔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그 친구와는 결국 서서히 멀어졌다.


프리랜서도 출근을 한다. 클라이언트가 일하고 있는 시간은 나 역시 일하는 시간이다. 언제 메일이, 문자 메시지가, 카톡 메시지가 올지 모른다. 가능하다면 그때그때 곧바로 대답을 해준다. 작업물의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수정해 보낸다. 세상에는 전화기고 뭐고 다 꺼놓은 채 잠적하길 밥 먹듯 하는 '작가님'도 있을 것이다. 창작의 괴로움에 밤새 술을 마신 후 마감이고 뭐고 배 째라 하는 모습.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할 생각이라면 그렇게는 곤란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고 침구를 정리한 후 깨끗이 씻고 커피를 만들어 컴퓨터 앞으로 가 전원을 켜고 메일 확인을 해야 한다. 오전 업무를 마친 후 정해진 시간에 점심식사를 하고 정해진 휴식시간을 즐긴 후 오후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에이, 일단 놀고 밤새지 뭐, 라는 것은 안된다. 당장 급한 일은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지구력이 떨어지게 된다. 지구력이 떨어지면 일에 지장이 생기고, 일에 지장이 생기면 신용도가 추락한다.


드럽게 재미없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천재 작가님이다!" 하며 일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돈을 받고 적절한 퀄리티의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마감을 엄수하기 때문에 믿고 일을 맡기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인가 사업가인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작업물의 퀄리티와 마감시한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절대로 반드시 후자다. 마감이 먼저라는 건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다. 나를 믿고 일을 제안한 담당자가 나로 인해 상사에게 깨지는 일은 가능하면 없어야 한다. 그 또는 그녀가 퇴근 후 우울하게 소주를 마시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내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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