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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Aug 30. 2020

8. 해골 계단

8. 해골 계단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키의 몇 배나 되는 탁자 위로 커다란 치즈와 빵, 복숭아 파이 등의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주방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화덕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검은 재를 잔뜩 껴입은 무쇠솥이 걸려 있었는데 고기 수프의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냄새가 방안을 진동시켰다.


 아이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공격에 대비해 주위를 조심조심 살피며 나아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짐승이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안과 레빌은 그냥 지나치자고 했지만 카할과 수진은 소리 나는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주방 안에 딸린 창고 바닥의 더러운 보자기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걷어내자 커다란 새장이 드러났는데 흑염소 한 마리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흑염소가 울었던 것이다. 염소는 그들을 보자 무척 반갑다는 듯 껑충껑충 뛰면서 더욱 크게 “매에에~”울었다. 그녀가 새장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자 흑염소가 살살 핥았다.


“아직 돌로 변하지 않은 동물이 있었다니 놀랍군. 통통하니 살이 올랐는데 잡아먹으면 아주 맛있겠어.”


 레빌이 군침을 흘리자 그녀는 살짝 인상을 쓰며 그를 한번 째려보았다. 그녀가 걸림새를 밀어 문을 열어주자 염소는 튀어나와 이리저리 껑충 뛰어다녔다. 그런데 바로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녀 옆에 바짝 붙어서는 촉촉한 눈빛으로 그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그들은 스스로 알아서 떠나겠거니 그냥 나두기로 했다.  


 주방에서는 그밖에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토르의 망치도 못 찾았다. 도깨비불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실망감만 가득 안은 채 그들은 다시 어두컴컴한 복도로 나왔다. 그런데 그새 도깨비불은 사라지고 암흑천지가 되어 있었다. 이안이 지팡이 끝에 불을 밝히고 수진도 핸드백에서 램프 반지를 꺼내 양 손가락에 끼어 불을 켰다.


 복도 양 옆으로 굳게 닫힌 문들을 지나쳐갔다. 점차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짙어졌다. 한 번은 이안이 카할을 데리고 아무 문이나 다가가 힘껏 밀어 보기도 하고, 손잡이로 점프해 잡아당겨 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큰일이다. 성은 너무 넓고 방은 너무 많아.”


 카할의 한탄에 동감한 그들은 힘이 쭉 빠져버렸다. 마치 이 넓고 큰 세상에 아주 조그만 개미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매에에~”


 불빛들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즉각 모아졌다. 저 멀리 빛 안에 들어온 염소 옆으로 나선형의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었는데 한눈에도 거인은 통과하지 못할 작은 크기였다. 계단의 끝은 오른쪽으로 꺾여 이어져 올라갔다. 이안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피어오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위층도 있었구나. 이러다 이거 최소 한 달은 걸리는 거 아냐? 어떡하지, 도대체 토르의 망치는 어디에 있는 거야?”


 그 순간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흑염소가 “매에에~” 울며 달려왔다. 그리고 수진의 치맛자락을 입으로 잡아당기며 계단 쪽으로 이끄는 게 아닌가? 그것은 물던 옷을 내려놓고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버렸다. 어둠 속에서 돌계단을 밟는 염소의 발굽소리가 아래까지 울려 퍼졌다. 그녀가 램프 반지 낀 손가락을 내밀어 위를 다시 살핀 후 이안에게 제안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는 게 어때? 혹시 망치가 있는 곳을 알려줄지도 모르잖아.”


“새장에서 바비큐 되기만을 기다리던 동물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안은 성 안으로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의심과 불안한 예감에 다시 젖어들며 예민하게 대답했다. 화가 난 그녀는 먼저 계단을 오르면서 뒤도 안 쳐다보고 말했다.

 

“그럼 넌 여기 남아서 찾아봐. 나는 올라가 볼 테니.”


 그녀가 성큼성큼 올라가자 다른 이들 역시 별도리가 없다는 듯 따라갔다. 가팔랐지만 다행히도 계단의 폭과 높이는 그들에게 딱 맞춰져 오르기가 수월했다.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이안은 지팡이의 빛을 이용해 계단과 그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며 생각했다.


‘도깨비불도 그렇고, 갑자기 나타난 흑염소가 길을 알려주는 것도 그렇고,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저들은 그것도 못 느끼나?’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자 청동 문이 가로막은 채 서 있었다. 염소는 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그녀가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문을 앞으로 밀어보았다. 꿈쩍도 안 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힘껏 밀자 문이 안으로 조금 열렸다. 염소는 민첩하게 그 사이로 들어가더니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발굽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 안은 검은 안개 같은 짙은 어둠으로 가득 둘러싸여 있었다. 바람이 살며시 그들 쪽으로 불어왔다. 아주 오싹하면서 으스스한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던 수진과 카할, 레빌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문을 가로막은 채 우뚝 서버렸다. 이안이 수진의 등을 밀어 겨우 비집고 들어와서는 작게 호통을 쳤다.

  

“왜들 그렇게 막아서는 거야?”


 동시에 그는 지팡이를 앞으로 쭉 내밀었는데 그만 아무도 내지 않은 비명을 저 혼자 내지르고 말았다.


“맙소사! 이게 다 뭐래?”     



 그들 앞으로 길게 뻗어 올라가는 돌계단들이 펼쳐져 있었다. 대략 삼백 개가 넘어 보였다. 붉은 카펫이 그 위에 깔린 가운데, 정 중앙으로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너비를 제외하고는 이안의 말처럼 맙소사, 양쪽 계단 위로 하얀 해골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대부분 사람의 것이고 짐승의 것도 있기는 한데, 뻥 뚫린 눈구멍들이 모두 중앙을 향해 돌려져 있었다. 다 합치면 적어도 수백 만개는 될 것 같았다.


 계단 밑에서 그들은 이 해괴하고 으스스한 장면에 말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그렇게 잠시 멍을 때리는 사이, 등골이 오싹해지고 겁이 나서 솔직히 올라가기가 무섭고 꺼려졌다. 그러나 이안이 먼저 계단을 오르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이곳에 온 중요한 임무를 다시금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토르의 망치를 찾아야 한다.’


 평소 용감하던 카할도 이때만큼은 겁이 났는지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럴 정도이니 수진과 레빌은 조금만 건드리면 거의 실신할 것 같은 상태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위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흑염소가 어서 오라고 그들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곧 이안이 옆으로 비켜줌으로써 카할이 앞장서게 되고, 레빌과 수진, 마지막으로 그가 한 줄로 나란히 오르게 되었다. 실제 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억세게 운이 좋은 독자 여러분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해골로 가득 찬 계단 한가운데를 걷는 그 무시무시한 느낌을 말이다. 마치 산채로 무덤 속에 매장되어 헤매는 것 같은 상상을 하면 조금 이해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해골들의 뜨거운 눈길까지 받고 있으니 레드카펫을 걷는 스타라도 되는 냥 긴장되고 숨을 쉬어도 쉬는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곁의 해골을 건드리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 또 조심하며 천천히 올랐다. 거의 100개 계단을 지나고 3분을 쉬어 가는데 뒤를 돌아볼 정도로 용감한 자는 이안 말고 없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앞으로 남은 계단들만 노려볼 뿐이었다. 그들은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안이 오르기 전에 살짝 뒤돌아봤다. 어느새 나타난 어두운 안개 같은 것에 아래 계단들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정말 기분 나쁜 곳이야.’

 그는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에서 걷던 레빌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뒤의 수진은 눈치를 채는 중이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하고, 가끔 헛발을 짚어 기우뚱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가 잡아줘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보기에 매우 아슬아슬했다. 제일 뒤에서 이안이 보다 못해 수진에게 좀 어찌해보라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레빌의 아슬아슬함이 결국 일을 치고야 말았다. 그의 오른발이 계단을 헛디디더니 그만 옆에 놓인 해골을 건드린 것이다. 다행히 그는 넘어지지 않았지만 해골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아래의 점점 더 많은 해골들을 건드렸다. 배열이 흩어지고 축구공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곧 사방이 조용해지자 레빌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말없이 흘겨보자 그는 헛기침을 한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너무 떨려서 말이야. 발이 그렇게 엇나갈 줄 어떻게 알았겠니?”


“어서 가요. 어서 여기서 벗어나자고요.”


 수진의 제안에 그가 재빨리 뒤돌아섰다. 제일 앞장선 카할이 한 발을 들어 올리려던 참이었다.


“통 통 통...”

“깔 깔 깔~”


 저 아래 어둠 속에서 뭔가 통통 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딱한 것이 돌계단에 부딪쳐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농구공이 바닥을 쳤다 튀어 오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덩달아 들렸다. 레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아이들도 순간 큰 공포를 느꼈다.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으로 보아 저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빨리 올라가! 어서!”


 이안의 절규와 동시에 다들 정신없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젠 아이들의 발에도 해골이 뻥뻥 차였지만 더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무너져버린 배열이었다. 그렇게 계단 100개쯤 더 지나갔을까, 문득 이안의 등으로 딱딱한 것이 날아와 때리며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보았다.

 

 지팡이의 불빛이 비추자 아래 어둠 속에서 해골들이 통통 점프를 하며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래턱을 움직여 깔깔 웃어대기까지 했다. 지옥의 한 장면 같았다. 이안의 등으로 달려든 해골들은 입으로 그의 옷을 꽉 문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추월하더니 수진의 머리카락과 드레스에 뭉텅이로 달라붙었다. 곧이어 레빌의 웨딩드레스와 카할까지도.


 공격당한 그들은 신경질적으로 드레스 자락을 털고 몸을 흔들어 그것들을 떼어내려 했지만 악령처럼 질긴 것들은 한번 물고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드레스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점점 살갗으로 다가와 앙 깨물기 시작하는데, 문 상처에서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들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카할은 달려서 계단 끝에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마지막 계단을 넘자 온몸에 붙어있던 해골들이 주르르 떨어져 내렸다. 마법이 풀린 것이다.


 카할이 어서 오라고 소리치자 나머지 일행들도 흉한 몰골로 뛰어올랐다. 세 명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데 마지막 계단을 넘자 괴롭히던 해골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여기저기 찢긴 옷은 그대로 형편없었지만 깨물린 상처들은 고통 없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꿈에서라도 제발 나타나지 않기를.


 흑염소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털을 비비적거리자 그녀는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그녀의 눈이 큼지막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여기 좀 봐봐! 어서.”


 일행들은 그녀의 램프 반지가 비추는 아래 계단을 쳐다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조금 전의 소란이 언제 일어났나 싶게, 처음 봤을 때처럼 질서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던 것이다. 레드카펫 정 중앙을 향하고 있는 해골들은 어느새 위아래 옆으로 딱딱 줄을 맞춰 배열되어 있었다. 깔깔거리며 흔들리던 아래턱을 굳게 다문 채 또 다른 방문객을 기다리는 듯, 무거운 침묵을 뿜어내며 제자리를 지키었다.


 그들의 등골로 다시 싸늘한 소름이 쫙 끼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중요한 임무를 떠올리고 서둘러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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