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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Aug 06. 2023

6. 이태백이 눈을 뜨다. - 1

6. 이태백이 눈을 뜨다.


 조선사신단은 부유한 송 씨 가문이 살고 있다는 송가장(宋家庄)을 지나 계주(薊州) 성읍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술맛이 으뜸이라는 말을 조선에서부터 익히 들어왔던 지원이었다.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터였다. 그는 몇 사람을 꼬드긴 후 기회를 보아 바로 술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머리꼭지가 핑 돌도록 마시고 또 마시면서 마음껏 수다를 떨었다. 어떤 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혀 꼬부라진 말투로 여기서 유명한 절인 ‘독락사(獨樂寺)’에 한번 가 보자고 청하였다. 그들은 함께 취기 오른 발걸음으로 뒤뚱뒤뚱 그곳으로 향하였다.



 독락사 안으로 들어서니 ‘관음지각(觀音之閣))’이란 현판이 달린 2층 건물이 나타났다.


 키가 작고 오동통한, 인상이 무척이나 좋아 보이는 스님이 저쪽 뜰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외국인이 쓰는 어눌한 조선말투로 스스로 절 안내를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고국의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참으로 기쁘고 대환영할 만할 일이었다. 사신단 일행은 반가워하며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절은 당나라 때 창건되어 중국 내에서도 꽤나 오래된 절 중의 하나이지요. 그래서 역사와 얽힌 이야기가 상당하답니다. 특히 안녹산이 이곳에서 처음 난을 모의하여 기병을 일으켰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지요.”


 관음각 안에는 16미터나 되는 커다란 금 관음상이 세워져 있었다. 부처의 머리 위로는 목까지 내민 작은 금부처들이 바늘꽂이의 바늘들처럼 총총히 빈틈없이 꽂혀있었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면서도 작은 장식 하나하나의 세밀함과 정교함,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이 보면 볼수록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단하구먼.”


 관음상 앞에서 지원은 취기가 점차 깨는 것을 느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치 거인 앞에 선 난쟁이가 된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볼 것은 다 봤다며 재빨리 훑고 지나갔지만 지원은 홀로 남아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태생적으로 뭐든지 열심히 관찰하고 샅샅이 살펴보는 그였다.


 그러다 다락 밑으로 비단 이불을 덮은 와불(臥佛) 하나를 발견했다. 신기하여 가까이 다가가니 설명해 주던 스님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오며 미소를 띠었다. 그의 어조가 익살스럽고 조곤조곤한 것이 듣는 사람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게 만드는 효력이 있었다.


“이것은 사실 부처가 아니라 취해 잠들어 있는 이태백(李太白)이랍니다.”


 그 말에 지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태백이 한바탕 취해 미처 집까지 가지 못하고 절 안에 드러누워 정신없이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와 스님은 서로 간단히 통성명을 나눈 후 조선의 상황과 사행단 일정 등 여담을 나누었다. 기다리던 일행이 밖에서 부르자 지원은 스님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후 바로 자리를 떴다. 스님은 여전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곤히 자고 있는 이태백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어라, 뭔가가 좀 이상하다.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느낌이 싸늘하고 이상했다. 아니, 분명 달라졌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다시 찬찬히 살펴볼까? 이불 아래 드러난 이태백의 발가락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머리 쪽으로 옮기는데,


“으악!”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경악한 눈초리로 그것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와불의 감긴 두 눈이 살며시 떠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고? 내 여태껏 저 눈동자가 있었는지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애초에 불상이 들어온 처음부터, 아니 조금 전만 해도 분명 두 눈을 감고 있지 않았던가?’


 옆을 지나던 다른 스님이 그 광경을 같이 목격하곤 마구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서 안으로 쏟아 들어왔다. 그러나 처음 발견한 스님은 그들의 소란이 눈에 들어오거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가출한 사람처럼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어 창백했고 등짝과 피부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그는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듯 멍하니 제자리에서 조금의 움직임조차 없이 마비되어 갔다. 발작이 온 것처럼 몸이 한번 부르르 떨더니 마비가 풀리자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척이나 다급한 일인 듯이 허둥대었다. 다른 승려가 묻는 말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그는 주지스님이 타려고 준비해 놓은 말 위로 헐레벌떡 몸을 날리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날쌔게 달려 나갔다.           




 수레 끄는 달가닥 소리와 말 달리는 소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듯 요란하게 천지를 진동시켰다. 목적지인 연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원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서 조용히 말을 타고 나아갔다. 어차피 바로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길이 매우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길 양가로 무덤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담을 올리고 해자까지 둘러 물을 흐르게 한 것, 또는 돌패루를 세운 것까지 보통 사람을 위한 무덤들은 아닌 듯했다. 역시나 부자들의 것이란다. 담 안으로 수목이 빽빽하기도 하고 기왓장 골이나 처마가 드러나 있거나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기도 했다.


 한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어떤 수레에 태워져 있었다. 아이는 무덤들 중 한 곳의, 박들이 매달린 나무 밑을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마지못해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슬쩍 흘겨보고는 그냥 무시해버렸다. 여러 번 당겨보았지만 계속 어머니가 무반응을 보이자 더 이상 소용없음을 안 아이는 홀로 거기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보이는데 왜 어머니는 못 본 체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는 점차 공포에 휩싸여갔다.   


 주렁주렁 매달린 박들 아래 담벼락 위로 허연 털로 덮인 두 앞발이 턱 걸쳐져 있고 백호랑이의 얼굴이 그 위로 살그머니 올라와 있었다. 그것은 눈빛만으로 사람을 때려죽일 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어딘가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어깨 위로는 자그마하고 희미한 것들이 딱 달라붙어 있었는데 귀신같기도 하고 도깨비 같기도 한 것이 자세히 살펴봐도 당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암튼 얼굴들이 하나같이 다 뭉개져 해괴망측하고 전체적으로 푸르뎅뎅하다는 점은 분명했다.

 

 아이는 오들오들 떨며 그 무서운 것들이 쳐다보는 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말을 탄 박지원이 딱 있었다.


 지원은 전 생애 동안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는 흥분으로 마음이 잔뜩 부풀어지고 가슴은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친구 홍대용이 그랬던 것처럼 이국의 선비들과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을 거란 장밋빛 꿈에 한창 젖어있을 뿐이었다.


 조선에서 온 선비여, 그 단꿈을 조금이라도 더 꾸길 바라오.

 산산이 깨어지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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