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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Nov 05. 2023

7. 백호와 대면하다. - 1

7. 백호와 대면하다.    

 

“이노옴, 양산박에서 패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 중놈아, 나와 다시 겨루어 결판을 내버리자!” 

“여러분도 잘 아는 대목이외다. “저희 세 사람은 비록 성은 다르나,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 중 의리를 저버리거나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그를 죽여주소서.” 맹세를 마치고 난 후, 관우의 주장에 따라 유비가 맏이가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는 막내가 되었다.”     


 길옆으로 햇빛을 가리기 위해 군데군데 삿자리를 걸쳐놓았다. 그 자리에 삼국지, 수호지, 서상기 등을 크고 높은 소리로 연기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앞에는 장난감이나 소품 같은 것을 쭉 늘어놓아 팔기도 했는데 조선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지원은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삼국지를 읊어대는 그 장사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장사꾼의 읊어댐은 한시도 끊이지 않았는데 마치 책 한 권이 통째로 그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어 입만 열면 자동적으로 발사되는 것만 같았다. 지원의 시선은 소품들이 있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록 장난감이라고는 하나 그 만든 솜씨가 아주 정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지원은 찬찬히 감상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물건들을 한번 살펴보자. 


 탁자 한편을 차지한 두어 치 정도 크기인 관우상은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칼을 비켜 찬 채 말을 탄 모습이 매우 생생하였다. 그 신비로운 마법 같은 솜씨에 현기증이 사르르 날 정도였다.

 

 그것 옆으로 그가 생전 처음 본 기이한 것들이 놓여 있었다. 십(十) 자 모양의 자그마한 철조각을 가죽 끈에 매단 목걸이 (기독교의 십자가 목걸이인데 당연히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흰색 선으로 눈 문양이 그려져 있는 한 치 정도의 평평한 푸른 돌, 은색 도깨비 문양을 새겨놓은 검은 천, 아, 이건 알아보겠구나, 노란색 종이에 붉은 글씨가 써진 부적 등이었다. 


 지원이 목걸이와 돌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도대체 이게 무엇 일고 끙끙대는 사이, 수석역관 홍명복이 마침 그의 옆으로 설렁설렁 다가왔다. 지원이 그를 통하여 장난감 주인에게 두 물건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으며 어떻게든 팔아야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두 눈 가득 불태운 채, 그는 삼국지의 황건적 토벌에 대한 대목에서 이야기를 딱 멈추었다. 그리고 살살 웃음꽃을 피우고 어깨까지 굽실거리면서 재빠르게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귀신이나 마마호환 같은 질병이나 호랑이 등의 재앙을 피하게 해 줄 도구이지요. 뭐, 일종의 부적이라 볼 수 있지요. 요 목걸이 조각은 유럽에서 들여온 것인데요. ‘십자가’라고 합니다. 특히 귀신 들림이나 악마퇴치, 흡혈귀에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지요. 

 요 돌은 역시나 머나먼 이집트라는 나라에서 온 것인데요. ‘호루스의 눈’이라고 역시나 흡혈귀나 사악한 악령 같은 것들로부터 보호해 주지요. 

 이 도깨비 문양 역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호신부이고, 이 종이부적은 뭐, 조선에서 오신 선생도 잘 아실 거라 생각되는데요. 아무튼요. 불운한데다가 다 찍어 붙이면 만병통치가 됩니다요. 특히 강시에는 즉효약이지요. 사행단으로 오셨다니 호신용으로 꼭 한두 개는 장만하셔야겠습니다. 암요, 오가는 길이 오죽 험하고 멉니까요? 제가 장담하건대 귀신, 호랑이도 여러 번 만나겠습니다요.”


 역관이 번역해 준 말은 이와 같았다. 지원의 얼굴에 대국에서 아직도 이런 미신 따위를 믿나 싶어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나 정작 그를 놀라게 한 건 주인이 아닌 바로 수역 홍명복이었다. 그가 자꾸 사라고 더욱 부추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옷 품 안에서 붉은 주머니를 힘겹게 꺼내더니 입구를 풀어 그 안에 든 노란 부적을 펼쳐 보이며 지원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절의 유명한 스님에게 간절히 부탁드린 후 받은 귀한 것이지요. 사행단 길을 동행할 때마다 늘 챙겨가지고 다닙니다. 만약 부적 한 장 없으시면 이번 기회에 하나 장만하시지요, 어르신.”


“아니, 이 사람아.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일세. 이런 미신 나부랭이와 불상 따위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설 곳이 없단 말일세. 나 역시 그런 것을 믿지 않네. 더군다나 조선에서 이런 걸 지니고 있다 잘못 들키면 큰 사단이 될 수도 있어.”


“그럼 압록강에서 버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행이란 게 워낙 험하고 먼 길이니 그렇지요. 그냥 이렇게 품 안에 넣고 다녀도 정신적으로 든든하고 좋습니다. (그는 부적이 든 주머니를 다시 품 안에 고이 집어넣으며 옷 겉면을 손바닥으로 탁탁 두들겼다.) 저 역시 예전에 몇 번이고 큰 고비가 있었지만 죽지 않고 또 이렇게 어르신과 함께 오지 않았겠습니까? 솔직히 저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겠습니까? 정사와 부사, 서장관께서야 점잖으셔서 그런 것을 싫어하실 테지만 이곳을 짚신 닳도록 드나드는 역관이나 상방비장, 마두는 분명 부적 한두 개쯤은 지니고 있답니다. 

 제가 잘 아는데요, 저 상판사 마두 득룡이도 품 안에 부적을 한 움큼씩 갖고 있더이다. 40년 동안 줄창 연경을 드나든 자이니 다 필요가 있어서 그렇겠지요. 제가 가격을 한번 흥정해 볼 터이니 속는 셈 치고 이번 기회에 하나 장만해 두시지요, 네에?”       


 그는 지원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유창한 중국어로 바로 주인과 가격협상에 들어갔다. 둘은 거의 말싸움이라도 벌이듯 격렬하게 침까지 튀겨가며 말을 주고받았다. 지원은 밑져야 본전이겠지 싶더니 슬슬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겁이 많아 대낮에도 빈방에 홀로 남아 있지 않거니와 어둠을 무척 싫어하여 환히 밝혀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정이었다. 어른인 지금도 무서움을 타는 건 여전했다. 


 그는 물건들 중 가장 값이 싼, ‘호루스의 눈’이라는 푸른 돌덩이를 넉 냥에 장만하였다. 그러나 몸에 지니기엔 여전히 꺼림칙하여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봇짐 안에 집어넣었다. 수역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손이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친절이 알려주었으나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수역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말을 탄 박지원은 자신의 마두인 창대만을 데리고 잠시 다른 길로 빠지게 되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삼하현(三河縣) 성 밖에서 헤어져 그날 묵을 예정인 연교보(烟橋堡)로 직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원 일행을 몰래 쫓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머리에 커다란 삿갓을 쓰고 넓은 어깨를 지닌 산처럼 덩치가 큰 사내였다.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을 미행하였다. 그들이 배를 타고 호타하((滹沱河)를 건널 적에는 일부러 모르는 척 지원 옆으로 다가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원이 탄 말이 하도 콧김을 내쉬며 요란하게 울부짖기에 하마터면 배가 전복될 뻔 하자, 그는 하는 수 없이 멀리 떨어져 웅크린 채 앉아 얌전히 뱃전에 철썩이는 파도를 구경하여야 했다. 절대 고개를 드는 법이 없어 삿갓 밑으로 그의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바닥에 질질 끌 정도로 옷자락이 길어 신발이나 발도 보이지 않았다. 


 배가 뭍에 닿자 그는 제일 먼저 쿵 내리더니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런데 마치 다리가 불편한 사람처럼 계속 몸을 심하게 뒤우뚱거렸다. 갈 길이 바쁜 지원과 창대가 그 뒤를 이어 내린 후 서둘러 길을 나섰다.


 잠시 후 사공이 빈 배를 밀기 위해 배 뒤편으로 다가갔다. 물 위로 띄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만 깜짝 놀라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아아아~” 무시무시한 비명까지 마구 질러댔다. 주변의 다른 사공들과 장사치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달려왔다. 

 

 이게 당최 뭐래? 그들 역시 똑같이 두려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몸을 들썩이고 웅성거렸다. 


 그들이 내려다보는 모래 뭍에 선명하게 찍힌 짐승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사라진 것도 더러 있었지만 분명 몇 개는 발톱이 선명히 찍힌 큰 동물의 것이었다. 발자국 하나가 거의 아이 얼굴만 하였다.


“호랑이 발자국 같습니다. 발자국이 이 정도로 크다 하더군요.”


 손바닥으로 크기를 재던 한 명이 손을 벌벌 떨며 공포에 찬 어조로 외쳤다. 주변 사람들이 헐레벌떡 뒤돌아 황급히 사라졌다. 처음 목격했던 그 사공도 벌떡 일어나더니 있는 힘껏 배를 밀어 서둘러 물에 띄었다. 그리고 재빨리 노를 저어 강가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도망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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