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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Nov 26. 2023

7. 백호와 대면하다. - 2


 배에서 내린 지원일행은 삼하현 성안으로 들어갔다. 삼하현은 옛적에‘임후’라 불리었었다. 떠나기 전 조선에서 위치를 세세히 알아왔었고 찾아가려는 집주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지니고 있었기에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원이 그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묻고 물어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니 성의 동편에 위치한 관왕묘에 도착하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묘 옆으로 대여섯 칸 정도의 자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서 있었다. 문에 걸린 명패를 보니 그가 찾던 집이 맞았다. 흙담으로 둘러싸인 초라한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지원은 말을 멈춰 세웠다. 한눈에도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지 알 수 있었다.

 

 지원이 먼저 앞장서며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담벼락 뒤에 숨어있던 뭔가가 서서히 담 위로 올라왔다. 아까 그들을 미행하던 그 삿갓 쓴 남자였다. 그의 어깨에는 시퍼런 창귀들이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삿갓이 뒤로 젖혀지자 우락부락한 호랑이의 허연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푸르스름한 두 눈동자는 점차 새파랗게 변해가고 그 가운데의 검은 동공이 가늘고 날카롭게 떠지었다. 그의 입에 침이 고이더니 혀가 밖으로 내밀어져 쩝쩝 입맛을 다시었다. 그는 오른쪽 어깨를 흔들어 앉은 채 졸고 있는 육혼을 깨웠다.


“어떻게 저자가 여기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지?”


 백호의 질문에 육혼은 퀭한 눈으로 잠시 말없이 지원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 위로 뛰어내려 기지개를 하며 몸을 쭉 위로 세운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가 바로 저의 집입니다. 저 박지원이란 선비는 제 친구 홍대용의 둘도 없는 지기이지요. 홍대용이 조선 사행단으로 여기를 지나쳤을 때 저와 친분을 나누면서 당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담담히 말하면서도 마치 자신은 저 집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육혼이었다. 


 원래 범에게 잡아먹혀 창귀가 되면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은 남아있지만 슬프고 기쁘던 감정들은 싹 사라지게 된단다. 원한 관계조차 까맣게 잊기에 보통 귀신이 갖는 깊은 한(恨) 같은 정서를 간직하지 않는단다. 대신 그런 감정들은 오히려 잡아먹은 자에게 전이되어 호랑이가 개를 잡아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신령하게 된다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홍대용과의 약속을 떠올린 지원이 마당에서 “어험.”헛기침을 하였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여러 번 헛기침을 한 후 근엄하게 조선말로 여쭈었다.


“여보시오, 용주(蓉洲) 손유의(孫有義) 안에 계시오?” 


 창대까지 나서 “아무도 없소?”조선말을 외쳐댔다. 한동안 조용하다가 창호지에 구멍이 숭숭 뚫린 문이 스르륵 밖으로 살짝 열리었다. 순간 그들은 깜짝 놀라며 어떤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주변을 고요히 흐르는 적막에 익숙해가던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들린 인기척에 저 스스로 놀라 등골이 싸늘해진 것이었다. 안에서 가냘픈 여인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끊어질 듯 이어지고, 너무 작아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거니와 더 큰 문제는 그들 중 아무도 그녀의 중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담 위에 올라와 있는 백호와 창귀들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인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안주인은 벌써 달포 전에 산서지방으로 글 선생이 되셔서 떠났습니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아 집에는 저와 어린 딸 하나만 있을 뿐이옵니다. 보시다시피 집이 너무 누추하여 대접할 것도 변변치 않아 이렇게 찾아주셨는데도 직접 나가 공손히 맞이하지 못하는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문이 스르륵 안으로 닫히었다. 불운하게도 산서지방에서 일을 마친 후 집으로 귀가하던 손유의는 결국 저 백호에게 잡아먹혔고 지금 창귀 ‘육혼’이 되어 담 위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눈곱만큼도 모르는 지원은 무슨 애달픈 사연이 있나보다 싶어 그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홍대용이 전해 준 편지와 선물을 툇마루에 얹어놓은 후 바로 뒤돌아 나왔다.      




 ‘성’이라지만 묘가 위치해 있을 만큼 매우 한적하고 스산한 곳이었다. 늦은 오후이건만 벌써 해가 많이 기울어져 어두워질 기미를 보이자 창대는 말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서 여길 떠서 숙소가 있는 연교보로 향해야 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멀리서 드문드문 보이던 인적이 지금은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당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날이지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이 몇 줄기 스쳐 지나가고 그들만이 덩그러니 길에 남겨졌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어서 서두르자꾸나.”


 지원의 재촉에 창대가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살피면서 말 위에 탄 그를 향해 토를 달았다.


“예이~. 그런데요. 여기 중국은 산뿐 아니라 마을에도 가끔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더만요.”


 안 그래도 겁나고 불안한데 그런 말까지 하다니 새삼 괘씸한 생각이 드는 지원이었다. 겁이 많은 성정이었으니 그 말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것이다. 또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의 속마음을 그에게 들킨 것도 같아 문득 부끄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마에 인상을 팍 쓰고 언짢은 어조로 창대를 나무랐다.


“아무리 호랑이가 있다고 한들 설령 사람 사는 마을에까지 내려오겠느냐?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서 가자. 그런데 왜 아직도 성문이 나오지 않는 것이냐? 이 길이 맞는 것이더니이아야?”


 이런, 아쉽게도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성조가 중간에서부터 떨리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저도 모르게 말끝을 길게 끌며 숨까지 헐떡인 것이었다. 주인의 불안을 확실히 알아차린 창대의 두 눈동자가 점차 커지고 양쪽으로 마구 흔들리더니 울먹이는 어조로 징징대었다. 마치 늑대에게 쫒기는 한 마리 어린 양과 같았다.


“분명 길이 여기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아깐 이렇게 먼 것 같지 않사온데 지금은 아무리 가도 이 길을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나이다. 너무 무섭사와요.”


“정신없으니 그만 좀 징징대거라. 곧 문이 나올 테니 어서 빨리 가기나 해.”


 사납게 쏘아 붙었으나 지원의 심장 역시 벌렁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 이미 공포의 쓰나미가 불어와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그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고 얼굴빛이 창백하게 질리었다.

 

 어느덧 해는 거의 저물어가 짙은 회색 구름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오더니 하늘을 성큼성큼 채워나갔다. 곧 마을의 실루엣도 어둠의 장막 밑으로 사라지리라. 컴컴한 기운이 주변을 둘러쌀 걸 예상하자 지원은 더욱 겁이 났다. 


‘어서 숙소에 도착해야 할 텐데, 아직 갈 길이 먼데 참으로 미치겠구먼.’ 


 창대의 맨발이 내는 발돋움과 말굽의 딱딱 땅을 치는 소리만이 주위에서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음이었다. 인적이 전혀 없어 괜스레 분위기가 음산한 것이 저절로 소름이 끼쳐왔다. 불어오는 약한 바람에 나뭇잎들이 서로 비벼내는 부스럭 소리에도 그들의 머리카락과 등짝이 연신 쭈뼛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흥~어흥~”


 우렁차게 내지른 호랑이 울음소리였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쩌렁쩌렁한지 땅이 흔들리고 나뭇잎들이 부르르 떨리었다.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은 글자 그대로 완전히 얼어버렸다. 눈조차 깜빡일 수조차 없었다. 창대는 너무 놀라 두 팔을 허우적대고 제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겁먹은 말이 두 눈에 경기를 일으키며 앞발을 들어 올려 허공에다 헛발질을 하자 지원이 말 등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경황이 경황인지라 엉덩이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그는 어떻게든 벌떡 일어났다. 말은 그대로 고삐가 풀려 뒤로 달아났다. 또다시 호랑이 울음소리가 나자 창대마저 방금 말이 달려간 방향으로 정신없이 도망쳐버렸다. 귀중한 목숨 앞에서는 사행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 동작이 하도 날쌔고 민첩한 것이 지원은 도저히 따라할래야 할 수 없는 경지로까지 느껴졌다. 


 홀로 길 위에 남은 그는 엉거주춤 선 채 주위를 노려보았다. 그의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마구 날뛰었고 온 혈관의 피가 바짝바짝 얼어붙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리었다. 발이 한 발작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뿌리처럼 그대로 땅에 박힌 듯 무겁게만 느껴졌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은 난생처음이었다.


‘아, 연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호랑이 밥이 되고 마는구나. 세상에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내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도다.’


 흙을 밟으며 터벅터벅 다가오는 소리에 그의 고개가 돌려졌다. 이런, 하얀 호랑이였다. 그것의 부릅뜬 두 눈에서 초록빛을 쏘아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이나 서책에서 접했을 뿐 실제 눈앞에서 이렇게 호랑이를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그만 맹수의 위엄과 커다란 몸집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 팔과 다리가 자신의 몸에 달린 것이 아닌 마냥 통제를 잃고 후들후들 떨려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어디서 들으니 범사냥꾼도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자동적으로 오줌이 찔끔 나온다던데 이건 찔끔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그냥 까무러쳐 기절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그렇게나 신령하다는 백호라니. 


 호랑이는 똑바로 그를 노려보며 빠르지도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접근해 왔다. 지금 뒤돌아 뛰어도 저것에겐 못 당할 거란 생각에 그는 제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아니, 사실, 발이 땅에서 떼어지지도 않았다. 이렇게 잡아먹히는구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려던 그때였다. 문득 구원의 나팔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딴따따따라~ 이건 귀신이나 마마호환 같은 질병이나 호랑이 등의 재앙을 피하게 해 줄 도구입니다. 뭐, 일종의 부적이지요.”


 수역 홍명복의 목소리였다. 아, 맞다. 아까 장난감 상인한테 산 그 푸른 돌. 

 

 그는 냉큼 등에 지고 있는 봇짐을 풀어 일기를 쓴 공책 틈바구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아래에서 돌 같은 것이 잡혀졌다. 그것이 푸른색인지 회색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으나 잡힌 크기로 보아 아까 산 부적이 맞는 것 같았다. 그는 돌을 꽉 쥐었다. 이제 믿을 건 이것밖에 없다. 그나마 믿을 구석이 생겨서인지 전보다 좀 용감해진 표정으로 그가 호랑이 쪽을 노려보았다. 


 호랑이는 갑자기 그가 봇짐을 내리는 광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어 호기심 있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뭔가를 손에 집자 돌변하여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무기가 나올 것으로 안 것이다. 지원은 그 돌을 무기처럼 앞으로 쭉 내밀며 자신 있게 소리쳤다.


“이건 마마호환을 퇴치하는 부적이다! 냉큼 물러가라!”


 호랑이는 그로부터 스무 걸음도 안 되는 곳에 멈춰 서 있었다. 그것이 그의 손에 든 부적을 유심히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효력이 있나? 제발 효력이 있기를 그는 진심으로 빌었다. 그런데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우렁차게 한번 울더니 보란 듯이 한 발을 턱 앞으로 내딛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소용이 없나? 그는 냉큼 부적 든 손을 당겨 재빨리 쳐다보았다. 아이고, 돌에 새겨진 흰 눈 문양이 자신에게로 돌려져 있었다. 이러니 소용이 없지. 그는 재빨리 그것을 반대로 돌려 다시 앞으로 쭉 내밀었다. ‘호루스의 눈’이 드디어 그것을 향하였다. 호랑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멈칫거렸다. 아하, 소용이 있구나. 수역이 나를 살렸어. 미신도 때로 믿을 필요가 있는 거구나.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는 전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별안간 지원의 등 뒤로 유독 진한 어둠을 품은 안개나 연기 같은 것이 쓱 몰려오더니 그 안에서 붉은 두 눈동자가 떠지며 번뜩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눈동자는 지원보다 머리 두세 개 더 위의 허공에 떠 있었다는 걸.


 그 모든 과정을 앞에서 지켜본 호랑이의 시선이 지원을 넘어 그것을 무섭게 주시하였다. 아직 해가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까만 밤보다도 더 짙고 어두운 안개가 위로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그 꼭대기에 떠 있는 두 눈알은 피로 충만한 듯 벌겋게 타오르며 그들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적수가 아님을 알아차린 호랑이는 겁을 집어먹어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고 그 가운데 검은 동공은 증발할 것처럼 일자로 가느다래졌다. 수염과 털이 쭈뼛 서고 발톱이 길게 털 밖으로 튀어나왔다. 큰 이빨들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데 지원은 자신에게 으르렁대는 줄 알고 혹시 확 덮칠까 싶어 내심 긴장했다. 그래서 그것을 향해 돌의 눈을 위아래로 더욱 힘차게 흔들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그것의 꼬리가 점차 말려 내려가더니 오른쪽다리 밑으로 숨겨졌다. 그리고 상체를 낮춘 채 자신 쪽,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머리 위를 잠시 노려보다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돌렸다. 그것은 이내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풀을 디디는 그것의 발바닥 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는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호랑이가 떠나자 붉은 두 눈을 가진 검은 안개도 스르르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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