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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Aug 25. 2023

카페  즐겁게 출근하기

일요일 7시. 남들 같으면 느긋하게 늦잠을 자거나 차 한 잔 하며 휴일을 만끽할 시간이지만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우선 오늘 장사를 위해 뭘 사가야 할지 정리를 해야 한다. 물과 우유, 커피는 다 제대로 있는지, 음료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은 더 필요하지 않은지, 여름에는 팥빙수도 내놓으니 얼음과 팥, 볶음콩가루, 연유는 충분한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아참, 디저트로 제공할 케이크도 준비해야지. 까먹으면 정말 곤란하다. 원래는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카페에 오븐을 하나 장만했다. 하지만 막상 오븐에 넣어 만들어보니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케이크를 굽는 데만 1시간 이상은 족히 소요되는 듯싶다. 맛이라도 있으면 감내하겠지만 제대로 된 맛도 안 난다. 결국 포기하고 집에서 만들어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맛이 없으니 오전에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믹서기 들고 부엌을 설치기 시작한다. 아내가 자고 있고 일본에서 돌아온 아들도 잠을 자고 있으니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한다. 바쁜 건 나 하나면 족하지 다른 이들까지 부산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준비를 다 마치고 나면 아침을 꼭 챙겨 먹는다. 카페를 하는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적은 매출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배고픔이다. 일단 영업을 시작하면 밥 먹을 시간이 없다. 김밥을 사가거나 밥을 싸가 시간이 나면 먹을 수도 있지만 언제 손님이 들이닥칠지 모르기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가 없다. 그럴 바에야 아침밥을 충분히 먹고 장사를 마칠 때까지 버티는 게 낫다. 가끔 올 지도 모를 금단 현상에 대비해 간단한 과자 같은 주전부리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이제 만반의 준비가 됐다.

몇 년 전 아내가 자신에게 줄 생일 선물로 구입한 그림. 주말만 여행을 떠났던 이전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카페를 시작한 후에는 그림의 떡이 됐지만. 

9시. 이제 90분간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다. 고속도로로 가면 서울에서 천안을 지나가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내와 함께 가는 날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자 가야니 지루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외로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저절로 깨닫는 시간이다. 고독을 씹고 가다 보면 하루 종일 우울할 때도 있다. 잘못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 싶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노래 부르기. 우선 차에 타자마자 라디오를 켠다. 주파수는 항상 고정돼 있다. 중장년층들이 좋아하는 70~90년대 노래를 주로 틀어주는 채널이다. 여기까지는 이전과 같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예전에는 애창곡이 나오면 흥얼거리는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목청이 터져라 부를 때도 있다. 가사를 틀려도 상관없다. 박자를 놓쳐도 음이 달라도 거리낌이 없다. 달리는 차 안, 완벽히 밀폐된 나만의 공간, 적당한 소음이 이 모든 것을 감춰준다.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가슴 저미는 노래가 나오면 눈물을 흘리고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잠깐 어깨춤을 추면서 댄스파티의 시간을 갖는다. 누가 뭐랄 것인가. 주위를 봐도 어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만의 여행이 지루하지만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이때 알았다.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손님이 있을 때보다 없는 시간이 더 많다. 가만히 있으면 신경만 쓰인다. 책을 보고 휴대폰으로 영화를 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카페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음악은 잔잔한 곡들이기에 따라 부르기가 적당치 않다. 이럴 때는 즐겨찾기에 저장돼 있는 노래들을 튼다. 비가 올 때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이나 권인하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이 센티멘털한 노래를, 맑은 날에 악뮤의 ‘오랜 날 오랜 밤’이나 캔의 ‘아로하’과 같이 밝은 곡을,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나 김동률의 ‘출발’ 같은 곡들을 따라 부른다. 무언가 부족하고 답답했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음악이 주는 위안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씩 가슴속에 스며든다.

60대에 접어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의 남성에게 음악은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는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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