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그니 Feb 10. 202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1

한 커플이 들어온다. 손을 꼭 잡고 있다. 자리를 잡은 후 음료를 고르기 위해 메뉴판 앞에 선다. "뭐 먹을래." "따뜻한 커피 마실래." "나는 시원한 거 마시려고 하는데." "그래? 그럼 나도 시원하게 먹지 뭐." 하나라도 같이 하려는 연인들의 모습이 한없이 귀엽다. 자리로 돌아가 어깨에 기댄 여자 친구의 머리카락을 빛나는 보석처럼 소중하게 보듬어주는 남자 친구.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더운 여름날 상큼한 레모네이드 한잔 즐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카페 알바를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청량함이다.

보통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 2팀 중 1팀 이상은 젊은 커플이다. 서로 손을 꼭 잡고 들어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생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연인인 것 같은데 서로를 보기는커녕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러려면 뭐 하러 같이 다니나. ‘라떼’ 세대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이다.

20, 30대 때는 몰랐지만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젊음을 ‘피어나는 꽃’이라고 얘기하지만 틀렸다. 꽃은 비교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젊음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겨울을 지나 막 새싹을 틔우는 싱그러움처럼, 얼음을 깨고 다시 큰 강, 바다를 향해 나가는 시냇물처럼, 꽃과 나비를 향해 손짓하는 꽃봉오리처럼 우리를 흥분시킨다.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 세상 최고의 향신료까지 곁들였으니 그 속에 들어간 연인의 모습을 얼마나 예쁘고 향기로울까. 청춘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느 수필가의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라는 찬사가 이해가 간다.  

가끔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창가로 가는 연인들도 있다. 카운터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책향기가 은은하게 묻어 나온다. 젊음의 눈부심을 담은 책은 이미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처연함까지 느끼게 한다. 

나도 예전에 저랬을까. 아닌 것 같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사회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한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겐 그랬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사실과는 다른 또 다른 사실을 접하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연애는 사치’라는 되지도 않은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흔한 미팅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에는 단 두 번. 대학교 2학년 때 서울 강남 신사동 클럽에서 소위 ‘과팅’이라는 것을 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짝을 지어 단 둘이 남았을 때 나눈 대화의 내용도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변혁이 어쩌고, 노동자 농민이 저 꾸구... 얼굴도 시커멓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놈이 미팅에 나온 여자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으니 어느 누가 좋아했을까. 뺨 맞고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다. 두 번째 소개팅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소개해 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옳았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내 꽃다운 청춘은 속절없이 사라져 갔다.

내가 나온 학과에는 과커플이 꽤 되는 편이다. 그들이라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똑같이 고뇌하고 똑같이 갈등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나름 자신들의 청춘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비록 가는 길이 다르더라도, 생각이 다르더라도 동기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다.

아내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메마른 고목나무 같던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친 천사 같은 존재다. 물론 청춘을 남녀 간의 사랑만으로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 진정한 나를 향해 나가는 여정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내는 내가 놓쳤던 것들을 되찾게 해 주고, 삶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해 줬으며, 늦게나마 나에게 청춘의 일부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사랑보다 의리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감사함은 잊지 않고 있다. 

누군가 얘기했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해보라고. 동의하기 힘들다. 젊음은 결코 길지 않다. 요즘처럼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반짝일 수 있는 시기는 그리 오래일 수 없다. 20~3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춘일 때만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놓치면 다신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껏 해 봤으며 좋겠다. 잃어버린 청춘을 후회하는 50대 후반의 넋두리다. 

이전 12화 영원한 서열, 넘버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