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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Jun 22. 2022

문은 언제 여나요

나는 카페 노예다(10)- 

“여기 정말 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번 왔었는데 문을 열지 않아 그냥 돌아갔어요.” 

마감을 앞둔 저녁 6시 무렵 카페에 들어온 한 손님이 주문을 하면서 이런 푸념을 했다. ‘아 평일에 왔었나 보구나’ 이런 생각에 평소처럼 답했다. “우리가 주말과 빨간 날(공휴일)에만 영업을 하거든요. 그래서 평일에는 문을 안 열어요.”

“그래서 주말에도 왔었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고요. SNS에 글을 올린 적도 있어요. ” 순간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얼마 전 아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가 SNS에 글을 올렸는데 우리가 문을 열지 않았을 때 왔나 봐. 주말인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고 댓글이 달려 있네.” 이 손님이 그 글의 주인공인 모양이었다. “혹시 주말에 문 안 열었다고 글 올리신 분?” “맞아요.” 이럴 땐 재빨리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문을 연다고 해서 왔는데 헛걸음하게 했으니. “아! 우리가 일이 있어 휴일에 문을 닫고 안 나온 날 오신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그 손님은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다행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카페 문을 닫기 위해 현관 철제문 걸음쇠를 걸고 내부를 청소하고 있는데 문 앞에 커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보통 영업이 끝났나 하고 그냥 돌아가겠지만 이 커플은 달랐다. 손을 넣어 걸음쇠를 열었다. 약간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커플이 말했다. “아직 끝날 시간이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문을 닫았네요.” 보통 커피숍들이 8시 정도까지는 장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 들어오라고 하는 수밖에. 대신 집안일이 있어 30분 정도 후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정중히 말했다. 흥쾌히 응해주는 커플. 고마웠다. 

우리 카페는 시간 개념이 투철하지 않다. 모든 영업점이 써 놓는 영업시간 같은 것을 걸어놓지 않는다. 우리들끼리, 혹은 영업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라고 말하지만 이조차 잘 지키지 못한다. 실제로 집에서 강화도까지 오는데 길이 막히면 11시가 넘어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아침에 나오는 시간이 카페 오픈 시간일 수 밖에 없다. 마감도 7시라고는 했지만 6시 정도까지 손님이 없으면 그냥 문을 닫고 일어난다. ‘아무리 찾아봐도 영업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왔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다. 

영업일은 주 이틀밖에 안된다. 일주일 중 토요일과 일요일만 영업한다. 물론 주말이 아니더라도 공휴일이라면 문을 연다. 손님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평일에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조건이 안된다. 노예는 직장에 나가야 하고, 사장은 몸이 허용하지 않는다. 토, 일요일 모두 나오는 날에는 다음날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 ‘저질’ 체력이다. 뭐라 탓할 수 없다. 남편 죽지 않게 돌보느라, 집안을 지키느라  몸과 마음을 다소진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 주말이나 쉬는 날이 아니면 손님이 없다. 유원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업 초기에는 평일에도 문을 열었다. 한 달 정도 그랬나. 인건비도 안 나온다. 그것만이면 괜찮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겨울이었다. 추운데 아내 혼자 덜덜 떨며 있다 보니 병까지 얻었다. ‘이건 할 짓이 아니다.’ 판단이 바로 섰다. 결국 포기하고 시스템을 바꿨다. 주말에만 문을 여는 것으로. 

문제는 꼭 어딜 가야 하는 일이 생길 경우다. 그 손님이 왔을 때는 아마도 처가 외숙모가 돌아가셨을 때가 아닐까 싶다. 아내 혼자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해 아들과 함께 아침 일찍 부산으로 내려갔다 한밤중에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 부부로서는 카페를 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우리만의 사정이다. 손님들은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다.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다고 안내문 하나 붙이겠다고 서울 강남에서 강화도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오늘 문 안 열었네’ 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카페 입구의 풍경. 바람이 불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소리를 안겨준다. 

돌이켜 보면 우리도 그 손님처럼 가게 문을 안 열었다고 푸념한 적도 있었다. 서귀포에 있는 한 조그만 식당인데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요일이 틀렸나 하고 다른 때 가도 안내문 하나 없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가는 것을 포기했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도 식당이나 우리 카페나 성의가 없다고 느끼는 건 다를 바 없다.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 미국의 모든 화폐에 쓰여 있는 글귀다. 1센트 동전에서 최고액권인 100달러 지폐까지 이 문구가 안 쓰여 있는 화폐는 없다. 신교를 믿는 미국에서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는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물건이나 사람의 가치도, 노력에 대한 평가도, 심지어 일부는 사랑도 화폐로 측정한다. 이 지고지순한 자본주의의 총아에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쓰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God’이 아니라 ‘Trust’. 믿음 또는 신뢰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모든 사업체는 시간을 정해 놓고 일을 한다. 기업이면 근무시간, 상점이면 영업시간이다. 그 시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놓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이 깨지는 순간 고객들의 믿음도 사라지고 모든 비즈니스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당연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우리는 카페 사장과 노예가 될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예 공식화하기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휴무일과 영업시간을 입력하고 전화번호도 넣었다. 주말 출근했을 때 전화기에 부재중 통화가 자주 떠 있는 것을 보고 카페로 전화가 안될 때 핸드폰으로 연결하는 대안도 마련했다. 이제는 정말 빼도박도 못하고 정시에 나가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 자영업자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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