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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Jun 09. 2022

영원한 서열, 넘버 3

월화수목금토일. 입사하자마자 맞이한 첫 주의 근무표였다. 지금은 노동착취다 살인적 근무다 하며 야단법석을 떨 테지만 당시만 해도 비슷한 업종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 이랬다. 그나마 매주가 아니라 격주로 일요일은 쉬었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토요일에는 꼬박꼬박 쉬었고 또 몇 년 뒤 ‘주 5일제’가 도입됐다. 물론 주 5일제라고 다 매주 일요일 다 쉬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 역시 격주. 근무한 일요일은 대체 휴일을 쓰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것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물론 혼자 일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결혼 내내 가사 노동을 도맡아 했다. 남편이 한 것은 아주 가끔 설거지를 하는 정도. 길지 않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전화 영어 학원 강사도 했다. 일이 끝나면 피 곤죽이 되는 아내 모습이 그때처럼 안쓰러워 보인 적이 없다. 아들도 노동을 한다. 학업 노동. 현대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다. 장래 더 좋은 직장을 잡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노동이다.

모두가 노동을 하지만 집안 서열은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 집에서는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서처럼 넘버 1이 아내다. 그 뒤를 아들이 차지한다. 나는 3위다. 말이 좋아 3등이지 정확히 얘기하면 꼴찌다. 애가 하나 더 태어났으면 ‘넘버 3’가 아니라 ‘넘버 4’가 됐을 것이다. 부르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집안 자산 중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10년 가까이 된 소형 SUV가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아내와 아들 몫이다.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아들 차지다. 모든 것을 아내가 마련하고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서운하지도 서운할 수도 없다. 결혼 전 장인어른의 지극한 사랑 덕에 고생이라고는 모르며 살았던 아내가 죽네 사네 하는 고비를 수차례 넘긴 남편 때문에 흰머리까지 생긴 것을 보면 이것도 과분하다.

카페에서도 집안의 서열이 그대로 이어진다. 사장님은 아내고 알바생은 아들이다. 나는 그다음이다. 아내는 카페에서 나오는 수익(물론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을 가져간다. 땅과 자본을 투자했으니 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넘버원이다. 아들은 가끔 나와 알바를 한다. 물론 좋아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돈이 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필요도 없는데 자진해서 오겠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노동을 했으니 임금을 받아야 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이자 이인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자본주의의 두 핵심 요소는 이렇게 카페에서 실현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적용되는 원칙들이다.

우리만이 갖는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예의 존재가 그것이다. 넘버 3은 주중에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을 한다. 근무일은 월화수목금금금. 수십 년 전에 경험했던, 결코 다시 올 것 같지 않았던 노동 환경이 ‘주 4일제’까지 거론되는 현실에서 되살아났다. 현대를 살아가는 봉급생활자이자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동막 해변의 갯벌.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뻘이 깊고 진하다. 그 속에 묻힌다면 아마 수백 년 동안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근무일만 그런 게 아니다. 노동을 했으면 대가가 있어야 한다. 정규직이면 월급, 알바면 시급이다. 넘버 3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8시간 노동을 하지만 월급도 시급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무급이다. 쥐꼬리만큼 이라고는 중세 유럽의 농노는 세금으로 내고 남은 것을 가질 수 있었고 , 고려·조선 시대의 노비도 ‘삯’이라는 것을 받았지만 카페 노예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냥 노예고 넘버 3다. 항의? 그런 것은 내 사전에 없다. 내가 카페라고 쓰지 않고 ‘까페’ 라고 쓰는 것은 ‘까불면 패(페)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 바로 앞은 바다다. 말만 그렇다는 얘기다. 동해안은 망망대해를 감상할 수 있고 조수간만의 차도 별로 없다. ‘이것이 바다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해 바다를 찾으면서 그런 시원한 풍광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바닷물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2~3시간 정도. 그것도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갯벌만 보다 가기 십상이다. 많은 손님들은 ‘바닷물은 언제 들어와요?’ 하고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은 썰물이라 한참 있어야 볼 수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강화도에 사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출퇴근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밀물과 썰물 시간표를 붙여 놓지 않는 한 모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일하는 나도 바다를 잘 보지 못한다. 

갯벌을 자주 본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 갯벌에서 놀다가 발이 빠지지 않아 고생한 기억도 있다. 그보다 더한 이유도 있다. 옛날 노예가 잘못하면 가마니에 둘둘 말려 매타작을 맞았다. 카페의 노예는 갯벌에 처박힐 수 있다. 한번 처박히면 찾기도 힘들다. 완전 범죄는 언제나 가능하다. 사장님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얘기한다. "너 그러다 갯벌에 처박힐 수 있다. 그러면 아무도 못 찾아." 아들도 거든다. "내가 삽 들고 갯벌 파면 돼. 언제든 얘기해." 아주 어렸을 때 갯벌에서 놀다 지나가던 뻘게를 잡아서 그 옆에 있는 구멍으로 쑤셔박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아이다. 내가 그 꼴을 당하지 말라는 법 없다. 그러니 항상 새겨들어야 한다. ‘주인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세뇌는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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