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고액자산가에 대한 시선과 생존 전략
한국의 고액자산가는 스스로를 '자산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숨기며, 자신이 가진 것을 가시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은근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그 정중한 거리 두기에는 한국 사회의 강한 정서적 압력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한국의 고액자산가는 언제나 ‘존경’과 ‘질시’라는 두 감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들이 타는 차, 입는 옷, 보내는 자녀 학교 하나하나가 기사거리이고 루머의 재료가 된다. 더 문제는,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다 ‘익명 댓글’과 ‘막연한 이미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국형 HNW는 한편으로는 대중이 흠모하고 꿈꾸는 삶의 주인공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터질 문제’로 간주되는 존재다. 이는 외국의 고액자산가들과는 대조적인 환경이다. 예컨대 유럽이나 북미의 고액자산가들은 문화적으로 사생활 보호가 당연시되고, 사회적으로도 부의 존재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 사회는 부자에 대해 “부러움과 혐오”를 동시에 표출한다. 칭찬 대신 조롱이 먼저, 존경보다 불신이 앞선다..“부의 갑질”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의 인식은 ‘부자는 언젠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감정적 프레임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HNW들은 선제적 방어 전략을 구축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며, 가족의 얼굴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히 설계한다. 이는 단순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아니다. 자신과 가족을 향한 예비 비난으로부터의 보호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왜곡할까’를 고민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긴장은 HNW의 소비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해외 고액자산가들이 고급 호텔이나 요트, 미술품을 ‘자기 향유’를 위해 소비한다면, 한국형 HNW는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을 찾으며 소비한다. 그래서 그들의 명품 소비는 단순한 자기 만족이 아닌, 리셀 가치와 투자 명분이 필요하고, 고급 식당 출입도 SNS 노출이 최소화된 형태로 설계된다. 이런 사회적 감시는 소비조차 전략화하게 만든다.
결국, 한국형 HNW는 자신이 부자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랑할 수는 없는’ 딜레마 속에 산다. 그들은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아니, 과시하고 싶지만 과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시의 순간, 그들은 단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공격받을 타겟’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초청을 꺼리는지, 왜 개방형 이벤트보다 폐쇄적 관계를 선호하는지, 왜 신뢰 기반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회적 낙인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그 낙인 아래에서 고액자산가는 익명성을 방패 삼아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것이 한국형 HNW가 선택한 생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