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냐 진술이냐, 헷갈리게 하지 마라
며칠 전 아들이 결혼했다.
어제 아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며느리 보니 좋으시죠. 수시로 안부 전화도 오겠네요”
이 내용을 보자마자 짜증이 올라왔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며느리 보니 좋으시죠.”가 아니라 “며느리 보니 좋으시죠?” 이렇게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 이 분의 문자는 대부분 물음표가 없고 문장에 오타가 많은 편이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문장에서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수시로 안부 전화도 오겠네요” 나는 바로 회신의 답을 보냈다.
“아직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해야 한다’는 누구의 생각이죠?”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냥 넘어갈 일에 뭔 짜증까지 날까?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다. 별 뜻 없이 쓰는 글이나 말에도 글쓴이의 무의식적 사고방식이 작동한다. 아마도 이 분의 무의식적 사고에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이교수님... 내일은 시간 되나요. 아직은 방학이지요”
이 분도 늘 물음표가 없지만 실제로 따져 묻진 않는다. 농담처럼 한두 번 언급은 했는데 그때뿐 결국 매번 이런 식으로 보낸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자녀가 결혼했어요.”
이 분도 물음표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자녀가 결혼했어요.”는 자신의 자녀가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맥락상 ‘자녀가 결혼했어요?’라고 내게 묻는 말이었다.
위 세 분의 공통점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중년 남성들이다. 물론 세 분의 사례로 ‘중년 남성들이 그렇다’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맞춤법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보냈으면 싶다.
맞춤법이 어떤 이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거슬린다.
오타가 많고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을 보는 게 힘들다.
사회적 통념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싫다.
물론 이럴 때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는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수행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