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달 Jan 08. 2021

99일 차

제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어제오늘 정말 정말 춥다.

그제 밤에는 폭설이 내려 우리 집 주변에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어제 오전에는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진입하기 전 언덕길을 오르지 못해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승용차를 보았다. 우리가 건너려는 횡단보도에 걸쳐 있던 그 차를 피해 좀 더 위쪽까지 올라 다른 횡단보도를 이용했는데, 그 자동차의 뒤를 따르던 한 운전자께서 자신의 차에서 내려 앞차를 힘껏 밀어주고 계셨다. 덕분에 그 길에 막혀 있던 다른 차들도 원활하게 다시 자기 갈 길을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눈이 좋은 모양이다.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이 신발로 눈밭에 깊이 박히면 신발이 젖거나 틈 사이로 눈이 들어가 동상에 걸릴까 봐 걱정이지만 아이들은 그런 걱정 따위 하지 않는다. 눈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은 채로 현관에 들어서면 아이보리빛 타일 위에 수묵화가 그려질 텐데 아이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눈은 하얗고 밟으면 그 느낌이 폭신하고 한 꼬집 집어 내 손에 올렸을 때 자신의 온기가 닿으면 연약하게 녹아버리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얼마 전에는 털장갑을 낀 채로 신나게 눈을 가지고 놀았다가 금세 손이 시려져서 고생한 적이 있어 다행스럽게도 털장갑을 낀 채로 만지지는 않겠다고 한다. 다만 맨 손으로 만져도 되냐고 간절하게 묻는데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에 조용히 스키 장갑을 검색해서 주문을 마친다)


 이렇게 눈을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만 햇빛이 사라진 시간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 날씨는 싫은 모양이다. 어제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집에 걸어오던 작은 녀석이 대뜸 “엄마, 겨울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좋아하는 계절이 제각각이었는데 겨울을 최애로 꼽던 큰 애 조차도 1~2년 전부터는 다른 계절로 갈아탔을 정도로 추위는 아이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작은 아이 바람대로 너무 춥지 않은데 눈을 가지고 놀 수 있다면 동상도 안 걸리고 얼마나 좋겠냐만은 아직은 상상 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아이가 올라프를 좋아하는 탓도 있으리라).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가을’로 꼽을 만큼 여름과 겨울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 계절에게도 측은함이 느껴진다. 당장 한 여름/한 겨울 속에서 365일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애정을 갖기는 어렵지만 이제는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어차피 이것도 지나갈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내게 좋은 날들이 온다는 것을. 비록 겨울은 싫지만 크리스마스도 있고 연말연시가 있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계획을 세울 기회를 갖게 되지 않는가. 게다가 나의 생일도 있고 폭신한 이불과 따뜻한 외투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다. 그런 연유로 아이에게 “그래도 이렇게 추워야 겨울이지, 안 그러니?”라며 불평하는 아이에게 겨울의 입장을 대변해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도시에서 최저 온도가 영하 19도라니! 낮 최고 온도가 영하 9도라니!


 제 아무리 겨울이라 하여도 이건 좀 심했다. 미안해, 난 여기까지 인가 봐.

작가의 이전글 98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