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럴 땐 다들 이런 표정일까
“왕십리?”
“뭘 놀라? 와봤잖아.”
봉순은 긴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창업 회의를 진행하자고 했다. 막힘없는 건 여전하다. 왜 굳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지 알 수 없으나 다방 사업에 대한 그녀의 계획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당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왕십리 골목의 작고 어두운 지하실.
봉순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새로운 아이템 제작에 고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3층 규모 건물의 지하 창고에 혼자 살고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 그 지하실은 뭐랄까, 다락방 같았다. 없는 게 없을 것 같아, 그곳에 들어서며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예상외로 넓은 그 지하공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괴이한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쌓여있었다. ―천장에 발을 붙이고 매달린 채 나를 쏘아보던 마네킹이 기억난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 제각각의 잡동사니들에게서 묘한 질서가 느껴졌다. 그것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면 의외로 아름다운 화음이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녀의 집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들어와.”
모든 게 그대로.
수년 전 그 풍경 그대로였다. 습한 공기, 어두컴컴한 조명, 화음을 준비 중인 잡동사니들, 먼지가 쌓여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반들반들한 바닥까지도. ―그 마네킹도 여전히 붙어있다...― 굳이 변한 것이 있다면 그녀의 화장이 약간 더 진해진 정도랄까. 오직 봉순만이 세월의 주행에 순응한 듯, 그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그때 그 자리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누군가를 데리고 왔을 때 "우린 지금까지도 이렇게 그대로인데, 넌 저 여자처럼 세월과 함께 했다~"라고 하려던 듯.
그리고 그녀의 ―진해진 화장과 달리 세월의 주행에 순응하고 있지만은 않던― 충격발언이 이어진다.
"봉팔아."
"응?"
“여기야.”
“음?”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되물을 때는 다들 이런 표정일까.
“우리를 돈방석에 앉혀줄...”
“잠깐잠깐!” 그녀의 입을 막을 기세로 허우적거려본다. “잠깐! 잠시만? 네가 하려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말이 아니길 바랄게.”
진심이었다. 진심이고 또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은, 이미 정해진 그 시나리오는, 나의 진심보다 강했다. 드라마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된장에서 똥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니 맞아. 눈치 빠르네. 바로 여기가..."
"안 돼! 말하지 마!!!"
“여기가 우리의 다방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