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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02. 2016

시작은 반이 맞다.

#3. 그러나 반이 시작의 의미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시작은 반이 맞다.


그러나 반이 시작의 의미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반 너머의 길고 고독한 터널을 통과해야, 비소로 내가 선택했던 시작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가을의 황량함이 조금씩 차가운 공기로 바뀌어 갈 무렵, 졸업을 앞둔 동기들 모두 터널의 끝을 향해 분주히 나아가고 있었다. 먼저 그곳을 나간 이들이 전했던 소위 '현실 세계'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맴돌았다. 터널 입구에서 보였던 총기와 혈색, 혹은 객기라 불릴만한 어떤 강렬한 에너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곳의 누구나가 그랬고, 나도 그랬다. 예비 졸업생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상황이었다.


봉순에게 그런 종류의 고뇌는 보이지 않았다. 낚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그 모습, 그 느낌 그대로였다. 쉬는 시간 틈틈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그녀를 궁금해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분리된 존재였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그녀의 수많은 ‘꽝 다음 기회에’를 함께했던 나로서는, 그 분리된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에너지를 알고 있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올리는 장식.”


그녀가 손톱 크기의 금색 구슬에 철사 고리를 접착하며 대답했다. 들어 올린 모양새가 꼭 귀걸이 같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는 3개월이나 남았는데.


"지금부터 만들어야 해." 그녀가 나의 갸우뚱을 읽었는지 말을 이었다. "배달을 할 거거든."


트리를 배달한다고?


"꽃만 배달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꽃 배달처럼 크리스마스에 아담한 트리를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배달해준다는 것이다. 역시나, 참신했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게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부모님과의 점등식에 함께 환호했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탓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중학교를 입학할 무렵부터는 트리가 창고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더 이상 날 위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줄 이는 없다. 내가 만들면 모를까.


소중한 누군가가 나의 회사로 또는 외로운 방구석으로 귀엽게 반짝이는 미니 트리를 배달해 주었다면, 하고 상상했다. 트리에는 지우개만 한 카드도 달려있겠지. 그 안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가 오밀조밀 숨어 있을 거야. 그거면 돼, 정말 다른 건 필요치 않아. 그만큼 그녀의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따뜻했다.


봉순은 그렇게 3개월의 시간 동안 500개나 되는 미니 트리를 만들어냈다. 결전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500개의 트리는 모두 주문 완료되었다. 그것도 조기 주문이었다. 게다가 주문은 초과되었다! 그야말로 '3개월의 기적'이었다.


500번째 주문을 받은 후  "끝."이라고 짧게 되뇌던 그 모습은 조금도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저 방학 숙제를 끝냈다는 듯 개운한 표정만을 보일 뿐이었다.


잠시, 아주 잠시 그녀의 캐릭터를 잊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나타났다.  


크리스마스 기간은 500개의 트리를 모두 배달하기에 턱없이 짧았다. 봉순은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배달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봉순의 <미니 트리 배달 이벤트>는 지역 신문에 나올 정도의 기염을 토해냈지만, 봉순은 오히려 '10만 원  적자'라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성공적이네.”


왜, 어째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후기.



크리스마스트리 이벤트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서로 연락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월은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삼켰다. 그렇게 그녀는 기억에서 추억으로 희미해져 갔다.




시작은 반이 맞다.

반은 시작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헌데 어쩌면, 수많은 반이 모여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의미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현실과 드라마의 경계에서 노를 젓던 봉순. 그 우악스럽게도 많았던 '시작'들은, 어쩌면 더 긴 터널로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간들 자체가 드라마였다. 그렇게 그녀의 장면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렸던 몇몇 사건이야말로 내 건조했던 삶의 유일한 단막 드라마로 남아있다. 5년 만의 연락에서 대뜸 동업 제안을 받았다. 신맛을 본 듯 벌어지는 미소를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다 지난날의 진하디 진한 드라마 덕이리라.


 “그래서 이번엔 무슨 사업인데?”


궁금증이 또 삐져나온다.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에서 왠지 긴 여행의 예감이 든다.


 “다방 사업이야. 단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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