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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Jan 04. 2016

지극히 찰나의 선택

#5. 이보다 좋은  술안주가 또 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였다.





“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일단 들어봐."


"아니. 난 일이 있어서, 가볼게."


말 끝나기 무섭게 집을 뛰어 나섰다. 그녀의 놀란 발걸음이 뒤따랐다. 잘 타지도 않던 택시를 잡아타고 폼 나게 문도 닫았다. 일단 출발해 주세요, 멋진 대사도 뱉었다.


친구를 찾아갔다. 세상이 다 끝난 듯 술을 마셨다. 친구의 익살에 기대어 백수생활의 서막을 자축했다. 지극히 찰나의 선택. 퇴직. 가망 없어 보이는 미래. 이보다 좋은  술안주가 또 있을까. 모든 일들이 남의 얘기인 듯 사소하게 느껴졌다.


남의 얘기 같던 현실은, 술이 깬 다음날까지 집요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연락은 없었다. 티브이 앞에 돌돌 말린 채 하루를 흘렸다. 다음 날도 그녀의 연락은 없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냈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가능했다. 그런데 막막한 느낌은 자고  일어날수록 더 커졌다. 막막해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또렷해졌다.


누구의 선택인가.


따지고 보면 그녀는 제의를 했고 나는 수락했다. 그뿐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신중한 선택의 삶을 살아왔던 나로서는 지극히 찰나에 이루어진 이 선택을 내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선택은 결과에 따라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잘 차려진 진수성찬에 숟가락을 올려놓는 드라마를, 그런 선택을 상상했다. 그저 상상이었다. 감춰져 있던 현실에 대한 불안이, 그녀에게 표출되었다. 그랬다. 반찬이 맘에 들지 않아 밥을 뱉어내는 아이처럼, 난 그저 어리광을 부렸다. 귀가 뜨거워진다.


계속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택시의 사이드미러에 순간적으로 비쳤던 그녀의 얼굴. 고요하지만 무표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표정. 눈 코 입 모두 본연의 모습대로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그 각각은 작은 일렁임조차 숨기기 위해 잔뜩 힘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본 것은 악다구니와 외로움 일지 모른다. 긴 세월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서 스쳐진 표정은 그런 것이었다. 그게 자꾸 떠오른다.








“고작 3일 만에 전화하려고 그렇게 간 거야?”


무겁게 집어 든 수화기가 무색할 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숱한 실패를 겪으며 쌓은 내공으로 나의 이런 혼란쯤은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사실 예상을 못했다고 해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의 감정이 일정 범위 이상으로 벗어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름이야! 다방 이름을 정해야 해. 이쪽으로 와."


또다시 지하실. 그녀가 무지개 색의 탁자 위에 팔을 괴고는 뭔가 적고 있다.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다. 미소인지 뭔지 모를 것이 오간다. 그 작은 눈을 미세하게나마 찌푸린 것 같기도 하다. 팔꿈치 아래로는 무지 공책이 펼쳐져있었고 그곳엔 여러 단어가 어항 속 물고기처럼 불규칙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마지막 물고기엔 그녀의 손이 닿아있다. 앉기 위해 의자를 당기자 어항에 '당긴 의자'가 새로 담긴다.


"떠오르는 대로 적는 거야?"

"응."


그녀가 '떠오르다'를 적으며 대답했다. 나는 한 두 단어를 이어 뱉으며 그녀의 끄적임을 좀 더 예열했다. 그림자, 노을, 빗자루, 나무 괴물, 마녀, 꿈, 하늘. 각자의 기억 혹은 추억 속에 있던 단어들이 어색한 공기 사이를 떠다닌다. 단어가 많아질수록 어색함은 자리를 잃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1시간. 고양이. 참콩. 구름. 커피노래. 앙상블. 달빛. '미안'이라는 단어도 슬쩍 껴넣는다. 공책에 적히진 않는다. 2시간. 손가락. 멜로디. 토토. 부엌. 시계. 좋은잔. 저녁소리. 고요함. 시작. 내일. 3시간. 비밀. 옷걸이. 커피걸이. 창고. 커피창고. 신발장. 서랍. 서랍속커피. 안방. 거실. 다락방.


"다락방 좋네."


봉순이 갑자기 '다락방'을 크고 진하게 적으며 말했다. 심지어 다른 단어는 누려보지 못한 겹 동그라미와 별표까지 붙는다. 그 반응이 참 오묘하다. 조금 전까진 별 얘기 없이 들리는 단어만을 적더니, 다락방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꾹꾹 눌러적으며 좋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언급되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음, 봉순이네 다락방 어때? 줄여서 봉다방."


그녀가 이제 막 떠오른 아이디어인 듯 말을 이었다. 얇은 입가를 깊게 파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이상하다.


"봉순아 혹시... 이미 정해놓..."

"아니."

"그럴 거면 왜 3시간이나...."

"아니야."


그녀가 빠른 주먹의 인파이터가 되어 말끝을 툭툭 털어내더니 흡족했던 입가의 음영을 지우고는 쳐다본다. 내 얼굴과 목소리에 남아있는 다른 의중은 우주 저편으로 보내라는 듯하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가 '갑자기' 떠올렸다는 '봉순이네 다락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촌스럽기 그지없다! 중고생 추천도서 목록에나 있을 것 같은 제목을 간판으로 달아야 한다니 앞이 깜깜. 정말이지 '봉순'은 카페와 관련된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곳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대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봉순이네 다락방이라... "

"왜. 별로야?"

"좋아. 좋은데..."

"좋은데? 별로야?"

"아니 아니." 소심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좋아. 좋은 것 같아."


그녀가 "네 덕이야."라며 다시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 포기하면 안 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카페라고 다를 게 없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저 멀리 보이는 내 직장의 이름. 퇴근길 지친 몸을 달래며 돌아봤을 때 마주칠 이름. 손님을 맞을 때는 물론, 컵, 메뉴판, 일기장, 사진첩에 새겨질 이름. 심지어 백수 된 아들 걱정에 마른침을 삼키게 될 부모님께도 말해야 한다. 엄마, 저 봉순이네 다락방에 취직했어요. 다시 물어보실 게 뻔하다.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이름이란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심지어 여긴 다락방도 아니야. 여긴 지하실이라고!


"저기, 봉순아."

"왜."


다시 인파이터 자세.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는 지하실이잖아."

"지하실이 어때서. 난 잘 살았어."


쉽지 않다.


"아니 내 말은, '다락방'이 아니라는 거지."

"그렇다고 봉순이네 지하실이라고 할 순 없잖아."


어째서 '봉순이네'는 고정된 단어인지 묻고 싶었지만 삼켰다. 목구멍이 쓰리다.


"음,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녀가 양쪽 눈썹을 미간으로 모으며 침묵을 잇는다.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세 시간이나 그 단어가 나오길 묵묵히 기다렸다는 것, 그만큼이나 그녀의 결정은 이미 더 오래전부터 다져진 것이다. 나의 세 치 혀로 뒤집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뭐, 딱히 더 나은 단어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나는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서는 입을 열었다. 결의에 찬 목소리로.


"그래! 봉순이네 다락방! 좋은 것 같아!"

"응!"


그녀가 노트를 다음 장으로 넘기더니 빈 공간 위에 우리의 결정을 적는다. '봉순이네 다락방'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녀의 제안처럼, 나의 선택처럼, 우리의 짧은 갈등처럼,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고조된 분위기처럼. 찰나의 선택일지 오랜 기다림의 결과인지 모르게, 그러나 꽤나 가슴 벅차게 우릴 찾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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