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고래 Jan 06. 2016

완성된 그림에 튄 물감

#7. 중요한 건 위치가 아니다.


"에휴-"


끊이지 않는 한숨을 어쩔 수가 없다. 봉다방의 위치 때문. 공사를 마친 봉다방의 내부는 ―내가 안경을 쓰는 사람이었다면― 안경을 고쳐 쓰고 싶을 만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한 명의 진두지휘 아래 완성되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 그리고 소박함이 있었다. 내가 손님으로라도 오고 싶다. 개업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일까.


그렇게 맘에 쏙 드는 봉다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제일 먼저 들리는 소리.


“취나물 천 원~”


그렇다. 봉다방은 시장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대로까지 거리는 100미터가 넘으며 그 골목골목에서도 또 골목에 있으니, 아무리 절친이라도 오다가 돌아갈 판이다. 주변은 또 어떠한가. 소형 공장들이 즐비하여있어 크고 작은 트럭들이 골목 막는 일이 허다하다. 트럭이 막으면 이 골목은 그냥 없는 골목이 된다. 해가 지면 정체불명의 고성까지 들려온다.


카페 골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관련 상권에는 속해 있어야 하는데, 공장, 밥집, 공장, 철물점, 공장, 떡집, 공장, 나물 가게, 공장, 술집, 술집, 술집, 또 술집, 그 술집 옆엔 공장, 뭐 이런 식이다. 그 가운데 홀로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봉다방은, 흡사 완성된 그림에 실수로 튄 물감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많지 않은 유동인구.  그중에서도 실수요자는 더 적을 게 뻔하다. 습관적인 불안이 밀려온다. 봉순은 이런 상황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흐뭇하다. 공사의 마지막 과정인 간판이 달리고 있다. 봉순이네 다락방. 귀여운 컵과 아기자기한 얼굴들이 그려진 간판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빛난다. 봉순은 지금 꿈을 이루고 있는 기분일까. 그건 어떤 기분일까.


“드디어 완성이야.” 뿌듯한 표정의 그녀.


"봉순아 뭐하나 물어봐도 돼?"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인광을 비춘다.


"왜 나야?"


"어?"


"왜 나냐고. 이 동업자로 선택한 사람이."


 학생 시절 자신이 하는 사업에 잔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나란다. 정말 그게 이유야?


"아니. 사실 다른 이유가 있어. 같은 이유이면서도 매우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지."


"뭘까?"


"네가 심리학자이기 때문이야."


이어서 그녀는 네가 심리학 분야의 조예가 깊다느니, 자신의 방향에 추진력을 달아줄 사람이 필요하니 어쩌니 꼬리를 달았지만, 결국 이런 장문의 연설은 '같은 과에 아는 사람이 너뿐이야.'라는 담백한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자신과 같은 분야의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왕이면 부려먹기 쉬운.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두 번째 이유는 비밀이야. 어쩌면 이미 너도 알고 있고."


주특기 나왔다. 호기심 촉수 건드리기. 하지만 그녀가 더 이상 말해주지 않을 캐릭터라는 것은 극명한 사실. 되묻지 않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궁금증은 방귀로라도 뀌고 싶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뭘? 뭘 알고 있는데. 뭘 알고 있는지 말해줘야 그 ‘뭘’이 내가 알고 있던 뭘 인지 몰랐던 뭘 인지를 알 거 아냐! 고약한 여자 같으니. 크게 외쳐본다. 속으로.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간 논문 속의 깨알 같은 활자와 숫자에 빠져 그 기본을 잊고 살았다. 중요한 건 봉다방의 위치가 아니다. 아니 중요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치가 깊은 산골이던 황무지이던 원하면 발길을 뻗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리산을 4일 밤낮으로 죽어라 종주하는 것도, 몸을 썩게 만드는 담배를 끊임없이 입에 붙이는 것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보기 위해 황금 같은 술자리를 마다하는 것도, 내면의 그 어떤 빈 공간이 충족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럼 발길은 이쪽을 향할 것이다. 고조된 기분으로 봉순을 돌아본다. 그녀도 내 생각을 읽은 것일까.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 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