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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r 11. 2024

네모의 시대

새로운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VI


창문 넘어 도망친 전화기는 약 10년에 걸쳐 다양한 기술적 진화를 거듭했다.


초기 휴대폰의 카메라는 그 해상도가 낮았다. 그것은 오징어와 심해 아귀 사이 어디쯤에 있는 내 얼굴도 사람처럼 보이도록 화질을 뭉게 주었다. 하지만 그 해상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더 선명하게 피사체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액정 화면도 그에 발맞추어 진화했다. 작은 공간에 흑백으로 존재했던 그것은 더 많은 컬러를 더 넓은 공간에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로 카메라로 더 선명하게 담은 피사체를 액정 화면에서 더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맘때쯤 셀카를 줄이게 되었다.)


보는 기술만큼 ‘듣는’ 기술의 발전도 빨랐다. '떼떼로리로리'라며 하나의 음으로 방정맞게 울리던 초기의 사운드 출력 기술은 어느 날 4폴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폴리는 '폴리포닉 polyphonic'의 약어로 한 번에 여러 개의 음을 낼 수 있는 물건을 의미한다. 4폴리는 동시에 4개의 음을 지원한다. 기존에 비해 4배나 풍성한 소리!


4폴리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리면 이전 기종을 쓰던 사람은 그 다이내믹하고 웅장한 사운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이게 그 4폴리야?”라고 묻게 되는 것. 소유주의 어깨가 올라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 사운드 기술은 16에 이어 32폴리까지 발전하면서 휴대폰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소리를 내게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설마 언젠간 휴대폰으로 노래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건가,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2세대(2G) 휴대폰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디자인의 다양성이다. 10년간 굉장히 다양한 디자인의 휴대폰들이 등장했는데, 보편적 형태인 '바형, 폴더형, 슬라이드형' 뿐만 아니라 카메라만 찰칵 튀어나오는 듀퐁폰, 액정 부근만 회전하는 가로본능폰 등, 참신하거나 엽기적인 시도들도 꽤 있었다.


심지어 기능이 별로여도 디자인만으로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 폰들이 있었다. 예컨대 모토로라의 '스타택'은 기능면에선 '이걸 왜 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그 고유한 디자인과 폴더를 열 때의 딸깍거리는 감성으로 인해 큰 인기를 누렸다. 아마 아직도 이 폰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또는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모토로라 '스타택'


그러던 어느 겨울, 때는 2007년 1월 9일이었다.


검은 폴라티와 청바지를 입은 (이미 잘생겨 보여서 그 첫인상은 기억이 나질 않는) 아저씨가 애플의 신제품을 발표한다. 그는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가장 기다려 온 날입니다"라는 첫마디로 관중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서 그는 세 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일 거라고 말했다. 그 첫 번째는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이고, 두 번째는 '혁신적인 휴대폰', 세 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다. 무대 위 큰 화면에도 세 가지 제품이 하나씩 등장했다. 사람들은 각 제품이 언급될 때마다 박수로 화답했다.


그런데 화면 속의 제품들이 교차되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이것들은 사실 세 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관중들은 열광하며 하나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의 그 연사는 천천히 걸으며 다음 말을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 제품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후로도 소위 눈이 뒤집히게 만드는 발표를 이어갔다. 그것은 역사상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중 하나로 언급된다. 


이 대단한 아저씨가 아이폰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을 지구로 가져온 탓에 휴대폰 2세대의 주역들은 빠르게 종말을 맞이했고, 그 이후부터 휴대폰의 발전 속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 들어섰다. 이내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통합되었다. 그렇게 '네모'의 장기 집권기가 시작됐다.


그 집권기는 새로운 휴대폰인 3세대(3G)부터 지금의 5세대(5G)까지 약 17년 간 이어지며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다. 더 크고 더 얇고 더 가벼운 네모. 더 대단한 기능과 멋진 디자인의 네모. 완전히 새로운, 네모.


우리는 네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네모의 시대


이 네모의 이름은 '스마트폰'이다. 단순히 휴대할 수 있는 전화기를 넘어, 기존에 컴퓨터나 MP3, 카메라 등 다른 디바이스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모두 지원한다. 가히 '스마트하다'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다.


다만 네모의 집권기 동안 '소통수단'으로써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고, 기존의 상대적 불편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을 뿐. (물론 아이폰의 작은 화면 속 세상은 밤새 그곳에 머물러도 다 누릴 수 없었을 만큼 충격 그 자체였지만, 이는 소통 수단과는 다른 문제이므로 넘어가겠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변화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문자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 '부분적 아날로그'에서 '풀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응? 이게 왜 인상적이지?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환으로 인해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섰다. 바로 '1'이 등장한 것이다.


반응 여부에 따라 '읽씹'으로 재탄생하는 그것은 상대방이 나의 메시지를 보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다양한 변화가 생겼는데, 가장 큰 것은‘그룹 채팅’과 '대화의 연속성'이다.


그룹 채팅 기능은 컴퓨터의 메신저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가능하던 다자간 대화를 휴대폰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여러 명이 하나의 대화방에서 동시에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그룹 채팅방 덕에 친구, 동료, 동호회 등 휘발되지 않고 유지되는 관계가 늘었다.


연속적인 대화도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내가 대화를 시도하거나 참여할 때만 그 순간에 놓였다. 하지만 현재는 내가 참여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가상의 소통 공간에 놓여있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으므로 참여하는 순간에 소통이 시작되는 게 아닌 셈이다. 전에 오가던 대화의 놓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게 한다.



1은 디저털에 따른 다른 변화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좀 더 투명하고 신속하게 만들었다. 내 메시지를 상대방이 언제 읽었는지 알 수 있으니 의사소통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책임과 부담감도 생겼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빠른 응답을 기대한다는 의미도 같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것은 업무의 영역까지 활용되어 삶과 일의 경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나는 카카오톡 알림을 꺼둔다. 각자의 목적과 사연을 갖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그것에 주의를 뺏기는 게 싫어서다. 심지어 메시지가 올 때마다 진동이나 소리를 발생시키는 누군가의 휴대폰이 주변에 있을 때도 영향을 받는다. 급한 일이 있으면 문자나 전화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메시지를 확인하는 일이 잦다. 이것은 소통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네모의 시대엔 맞지 않는 태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붙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다행히 아직까진 이런 나도 용인이 되는 것 같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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