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Nov 04. 2018

주전골 이야기

설악산 주전골은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단짝 친구가 결혼한 후로 토요일에도 오락실에서 게임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무료한 나날이었다. 집으로 가는 언덕길이 높게만 느껴져 어렵게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남동생이 뛰어 내려오며,

“누나 어떤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었어. 빨리 가 봐” 

“영내와 사귀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라며 무턱대고 엄마부터 찾아와 명함을 내밀고 갔다는 사람은 전 남자 친구!



대학교 1 학년 때 만난 우리는 나는 대학생 새내기로 그는 취업준비생으로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하는  만남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또 어느 날 헤어지고 말았다.



그랬던 우리가 그날 이후로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멋진 사회인으로 변신한 그 사람은 다시 나를 설레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설악산으로 캠핑을 가자는 제안에 나는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우리의 첫 여행이며 난생처음 캠핑이란 것을 하게 된 날이다.



바리바리 먹거리를 준비해 갔건만 빠진 것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사기 위하여 산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혼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한산한 계곡에 캠핑객은 우리뿐이었다.


그때 몰려오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우리 텐트를 기웃거리더니 계곡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텐트 속으로 급히 들어갔고 텐트 칠 때 쓰던 삽 같은 것을 손에 쥐고는 그저 그 사람이 빨리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정말 무서웠고 가슴이 떨렸다. 그들이 오륙 미터 앞까지 왔을 때 나의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다.

 "하느님, 부처님 제발..."  그때 저쪽 모퉁이에서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텐트 지퍼를 내리고 손을 흔들며 "종승 씨~~~" 그 사람은 미친 듯이 달려왔고 그들은 슬금슬금 오던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울 남자가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낮까지도 멀쩡했던 날씨는 밤이 되면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더니 점차 폭우로 변해갔다. 순식간에 불어난 계곡물은 빠른 속도로 텐트 가까이 다가왔다. 밤새 손전등을 켠 채로 텐트 밖만을 주시하던 우리는 한밤중에 텐트를 걷어야만 했다.  물에 빠진 생쥐가 된 채 허겁지겁 산을 내려왔을 때는 희미하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온 비 다 맞으며 텐트를 걷던 그의 모습이 또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 

이날 이 모습에 반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알콩달콩 살고 있다.



눈에 익숙한 설악산 봉우리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을 바꿔 입을 지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믿음직스럽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직장 생활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힘들 때면 자주 찾는 곳이다. 산에 올라 좋은 공기 마시고 오색온천에 몸을 담근 후 동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오면 쌓였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산채백반과 함께 마시는 달콤한 머루주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주전골은 친정집과도 같은 곳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나들이로 떠난 산정호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