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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27. 2019

여행으로 알게 된 대만 이야기

국립 중정 기념당

타이완 대만 타이베이?? 항상 헷갈렸던 곳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대만의 현지 발음이 타이완이고 타이베이는 그 나라의 수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대만은 공산당과 대치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점에서 공통의 아픔이 있었기에 1948년 공식적인 수교를 맺으며 긴밀한 사이가 되었고 장개석 총통과 박정희 대통령이 서로 방문을 하며  40여 년간 친구로서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70년에 접어들면서 중국은 소련과 대치하기 위하여 미국과 손을 잡고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며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일부분이라 하여 대만은 UN에서 상임이사국 자리가 박탈되고 만다. 우리나라도 중국과의 수교를 위하여 대만과 단교하게 되었다.


그렇게 얼어붙었던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녹기 시작하다가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 '가을동화'가 시청률 1위를 달리며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외에도 인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노래가 대만 음악차트 1위를 하는 등 한류 열풍은 두나라의 얼었던 관계를 한층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서운했던 감정이 사라졌을지는...


타이베이의 시내 중심에 있는 국립 중정기념당은  1975년 그가 서거한 이후 대만과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들이 돈을 모아 장개석(장제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곳이다. 



장개석은 중국 공산당을 밀어내고 조직을 개편하여 미국의 원조를 받아내는 등 20년에 걸쳐 중국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다.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쑨원과 삼민주의를 주장하며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근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황푸 군관학교의 교장이 되면서 교육생을 배출하여 자신과 국민당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주도권을 잡게 된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다는 명분으로 북벌을 시작으로 항일전과 공산당 토벌 등 성과를 내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의  진주만 공격으로 반식민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소련과는 우호협정을 다짐했으나 협정을 깨고 마오쩌둥의 홍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모호한 직책으로 중국 최고 통치자로 지내오다 국공내전을 재개한 지  2년 만인 1948년에 중화민국 초대 총통에 취임했으나 1년 뒤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피신하는 신세가 된다.


대만에는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으나 유혈진압으로 짓밟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철권통치로 27년이나 집권하면서 토지개혁의 실시로 민중의 생활 안정과 자연스러운 공업화 토대를 마련하고 공교육에도 전 국민 9년간 의무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의 순조로운 경제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전시 사진 속의 김구 선생



장개석과 송미령(쑹메이링)의 사진과 생전 유품들


쑨원의 혁명동지였던 쑹자수는 쑨원을 만난 후 중국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쑨원과 동지가 된다. 그에게는 막강한 세 딸이 있었다.  돈을 사랑한 맏딸은 부유한 은행가였던 쿵샹시와, 권력을 사랑했던 셋째 딸은 장개석과, 조국을 사랑했던 둘째 딸은 쑨원과 결혼하여 후에 중국 공산당의 국가 부주석 자리까지 올랐다.


쑹자수의 세 딸





장개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떠올랐다. 친구라 하며 지내는 동안 닮아간 것은 아닐까? 군부독재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 발전을 이룩한 점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화교들이 기념관까지 세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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