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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삽 호수에서 만난 사람들

by 마미의 세상


동남아 최대의 담수호인 톤레삽 호수에는 나의 상상 속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옥색 호수와 낭만적으로 떠다니는 쪽배' 따위는 없었다. 그 대신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디넓은 호수, 붉은 흙탕물을 출렁이며 다니는 허술한 유람선 그리고 낡디 낡은 수상가옥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빈민촌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충돌로 지반이 침하되어 형성되었다는 호수는 국토의 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수심은 보통 1미터가 되지 않으나 여름에 역류가 일어나면 9미터까지도 된다 한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온갖 부유물과 다양한 어류들을 호수로 실어 날라 이곳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을 만들어주었다.

강기슭의 수상가옥에는 여느 집처럼 빨래가 널려있고, 키우는 개와 닭도 보이고, 한낮의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물통 같은 것을 타고 노는 아이들이 있다. 호기심에 한참을 셔터를 누르다 보니 자기들의 일상을 훔치는 무례한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있다. 미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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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있을 때 잠시 휴게실 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준다. 그곳에는 해맑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맑은 눈이 예뻐 카메라로 담는데 난데없이 커다란 뱀을 몸에 휘감은 아이들이 나타난다. 소스라치듯 놀라 '얼음'이 된 나를 다다다닥 하는 셔터 소리가 '땡'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들을 몇 컷 담아 본다. 그러자 그들은 돈을 달라고 성을 내며 우리들 앞으로 다가온다. 또다시 새로 뱀을 메고 나타난 아이들은 일부러 우리들에게 포즈를 취해준다. 팁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닳고 닳은 모습에 모두들 외면하자 우리를 안내해 온 가이드가 그들의 손에 과자와 돈을 쥐여준다. 인색한 모습을 들킨 우리는 슬쩍 외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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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만난 가이드와는 선택관광 때문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여행사의 횡포로 동남아 상품인 경우에는 그들에게 따로 보수가 없다 한다. 요령껏 선택관광 및 쇼핑을 통하여 수입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단다. 선택관광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에게 마구 화를 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몇 개를 선택했다.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절대로 아무런 선택관광이나 쇼핑은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마음먹은 우리를 변하게 한 것은 넉넉하게 웃으며 우리를 안내해 주는 가이드 덕분이었다. 선택관광 때문에 기분 나빴다는 우리를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한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았다.

"호텔 물드시면 안 돼요 배탈 나요."

자상하게 웃으며 하나하나 챙기는 그 사람에게 우리는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선택관광을 안 하는 대신

얼마의 수고비를 걷어 주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곳까지 와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그는 이렇게 해서 돈을 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곳 아이들이 정말 불쌍해요. 호텔에 가시면 일회용품 모두 가져다주세요. 아이들이 양치질을 못해 성인이 되기 전에 이가 다 썩어버려요"

돈 드는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모든 일회용품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횡재라도 한 듯 행복하게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집에서 안 입는 아이들 옷을 여행사에다 맡기면 그에게 전달될까? 아니 치약과 칫솔까지? 하며 머리를 굴렸지만 여태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상황버섯을 파는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그저 관심 없이 먼 산 만을 바라보는 나를 쳐다보며 나의 아픈 곳곳을 죄다 이야기하지 않는가? 게다가 큰 딸을 보며 살이 찌는 이유가 몸의 순환이 안되어 그렇다는 둥, 작은 딸은 그전에 유산을 여러 번 하여 아이가 부실하다는 둥....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도 안 했고 내가 유산시킨 것은 또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 한의사라더니 점쟁이?

절대 쇼핑을 안 하겠다는 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만병통치약인 상황버섯을 사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 온 상황버섯은 5년이나 지난 지금도 베란다에 걸려 있다. 우즈베키스탄에 근무하던 남편이 사 온 차가버섯에 밀리고 말았다. 가끔 버섯물에 싫증이 난 딸들이
"엄마 보리차 먹고 싶어"
"나도! 하지만 저 버섯차 다 먹은 후에"
두 가족이나 버섯을 사는 바람에 가이드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곳에서 서비스로 준 버섯까지 우리에게 주었다. 주로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우리는 가이드에 의해서 어떤 때는 아주 즐거운 여행으로 또 어떤 때는 아주 지루한 여행으로 변해버린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그분은 아직도 그곳에서 기러기 아빠로 계실까?

돌아오는 뱃길에 반갑게 한글이 눈에 보인다. 아마도 의료봉사가 있나 보다. 그때 옆에 있던 작은 딸,
"엄마 나 꼭 이곳에 봉사단으로 다시 오고 싶어. 나는 이곳이 너무 좋아"
그 후로도 얼마 동안 딸의 가슴속에는 이곳 캄보디아의 추억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편입과 취직에 눌린 그녀는 이곳까지의 봉사는 다시 꿈을 꿀 수가 없었고 다만 틈틈이 할 수 있는 NGO 활동으로 대신하고 있다. 작년에는 양천구청장으로부터 봉사활동상을 받았다. 지금도 기회만 닿으면 달려 나가는 그녀, 온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줄 줄 아는 사람으로 커줘서 고맙기 그지없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여행은 소원했던 딸들과 많이 가까월 질 수 있었고, 남겨진 예쁜 그녀들의 사진을 보는 시간은 무엇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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