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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Feb 06. 2022

봄, 너 어디쯤 오고 있니?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절에 온지도 거의 1년 만이다. 작년 봄 1년 간의 기도 비만 내놓고는 코로나를 핑계 삼아 초하룻날에도 절에 오질 않았다. 며칠 전 안강에 계신 스님께 전화가 왔다.

“영내야, 올해 너 삼재야. 속옷 보내고 입춘인 2월 4일에는 꼭 법당에 있어라” 

차일피일 미루다 겨우 입춘 당일 아침에야 절에 왔고 또다시 1년 치를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때 지나가시던 스님께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는 “매달 오셔야 하는데…..”하시는 것이다. 머쓱하게 목례만 하고는 빠르게 법당으로 갔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줄줄 외우던 다라니경도 천수경도 지워버려 법회 중 몇 번이나 멍하니 있어야 했다. 몰려오는 죄책감에 사시 법회가 끝나자마자 얼른 절을 나오며 이 모든 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해 본다.


다른 해는 겨울이 왜 이렇게 따뜻하냐며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올해는 추워도 정말 너무 춥다. 날이 추우면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오금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나는 정말 겨울이 싫다. 두터운 외투 주머니에 두 손 쑥 찔러 넣고 걷다가 벌써 움이 텄을 리가 없는 목련 나무의 보송보송한 솜털을 살펴본다. 언제쯤 따뜻해지려나! 

이제 곧 푸근해지면 겨우내 얼어버린 나뭇가지를 비집고 어김없이 푸른 새순이 돋아나겠지! 화려하게 만개한 꽃보다 처음 새순이 돋아날 때의 풋풋하고 여린 모습에 한없는 기쁨을 느낀다. 


사진을 시작해 몇 년 동안 주로 찍었던 것이 꽃이다. 만물이 잠든 2월 중순이면 꽁꽁 언 땅을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노란 복수초로 시작하여 노루귀 바람꽃 등의 야생화를 쫓다 보면 어느새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등 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바짝 말라버린 나뭇가지에도 새순이 돋아 사오 월에 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그 풋풋한 모습에 황홀해하며 좋은 기를 듬뿍 받아간다. 한여름 산사를 붉게 물들이는 배롱나무에 이어 현란하게 물든 단풍까지 꽃 따라 전국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훌쩍 가버린다.

올해도 벌써 지리산 화엄사 일원에 복수초가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전 같으면 냅다 달려갔겠지만 이제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곧 야생화들도 차례로 피겠지만 차가운 바람맞으며 눈 덮인 계곡에 위험천만하게 엎드려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다. 



작년 여름 10여 년간 그 고생을 하며 찍어 온 사진을 한 곳에 모으다 그만 실수로 몽땅 날려 버리고 말았다. 외장하드 A/S로 다행히 외국 여행 사진만은 건질 수 있었지만 국내 여행 사진과 꽃 사진은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팔딱팔딱 뛸 노릇이다. 아마도 새로운 눈으로 꽃 사진을 다시 찍어보라는 뜻이었을까? 비록 남에게 보여 줄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지만 화려한 꽃들의 요염한 자태와 춥고 덥고 위험했던 날 사진을 찍던 추억만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친구들 몇몇은 벌써 귀촌을 하였다. 부동산을 하던 친구는 우연히 충청도 어딘가의 땅을 경매로 받더니 농막 하나 지어놓고는 집에는 오지도 않고 아예 그곳에서 살고 있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응, 눈 뜨면 호미 들고나가서 잡초 뽑고 물 주다가 해지면 들어와서는 그냥 떨어져서 자.”

“아니 이 나이에 여행이나 다니지. 어쩌자고 농사를 시작했어?”

“너는 그 짜릿한 맛을 몰라서 그래. 씨 뿌리고 나면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이 얼마나 예쁜지 아니? 그리고 쑥쑥 자라서는 금세 열매가 달린다니까.”

하도 자랑하는 통에 나도 작년 봄에는 용기를 내어 구청에서 텃밭과 텃밭 상자를 분양한다기에 신청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원래 농사를 지어봤던 남편은 두세 평 정도의 텃밭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이 애써 키워놓은 화분에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죽이기 일쑤인 똥 손인 내가 직접 씨를 뿌려 식물을 키워 보려고 한다. 며칠 잡초만 뽑다가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강아지를 싫어했던 내가 그렇게 강아지에 빠진 것처럼, 혹시 씨를 뿌려 돋아나는 새싹이 예뻐서 밭에서 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올해도 놓치지 말고 분양 공고에 신청해 보련다.



봄, 너 어디쯤 오고 있니? 혹한 추위 견뎌내고 예쁜 싹을 틔운 나무처럼 바짝 마른 내 마음속에도 따스하고 고운 햇살을 잔뜩 내려주어 새싹이 돋아나게 해 주렴. 이제는 욕망도 시기도 미움도 없이 꽁꽁 언 강 밑을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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