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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요 Mar 04. 2022

재발 불안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환자가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여 우리가 그 환자를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중요하게 해야 할 질문 중의 하나는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재발이 두려운 것은 당연한데, 재발이 왜 두려운 것인지 환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걱정들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재발이 되면 나는 직장을 잃을 것이고, 사회적 지위를 잃을 것이고, 가족 내에서의 권위나 위치를 상실할 것이고, 가족이 간병인으로서의 역할을 견디다 못해 떠날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즐겼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건강할 때의 나다운 삶을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라는 걱정은 두려움을 유발합니다. 나를 설명하고 나를 나답게 했던 많은 것들을 암 진단과 치료를 받고 합병증을 겪는 동안 잃을 수 있습니다. 자아정체성에도 변화가 오는 것인데요. 힘든 치료를 겪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이는 자존감의 저하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일할 수 없고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아픈 나는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도 하고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이 가족을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의 고리에 빠지기도 합니다. 


암을 진단받는다는 것은 지금부터 내 삶을 내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암 치료 과정에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고 의사나 병원이 지시한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 인간은 자기 조절감 sense of control, 통제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살아갈 때 느끼는 자기 조절감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환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조절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치료를 받고 언제 회복할지 어떤 후유증을 안게 될지 결국 삶을 되찾을 수나 있을지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런 자기 조절감의 결여가 불안과 우울을 유발합니다. 


또한 암이 재발하면 이번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두려움의 기저에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도 여러 가지 근원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이 왜 두려울까요. 

먼저 죽음 자체가 두려운 이들이 있고,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이들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이들에서 호소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신체적 통증입니다. 그 밖에도 죽어가는 과정 동안에 몸 곳곳의 장기들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나타나는 전신부종, 요실금, 변실금, 구토, 불쾌한 채취 등의 증상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것, 기력을 잃고 스스로 거동할 수 없어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데서 오는 낮은 자기 가치감,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두려움은 비롯됩니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이들은 종교적인 이유를 들기도 합니다. 제가 만났던 어떤 동성애자 환자는 에이즈와 직장암으로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었는데 죽음이 두려운 이유에 대해서 ‘선생님 제가 가톨릭 신자인데요. 죽은 뒤에 지옥에  가게 될 것이 가장 두려워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서 오는 막연함 공포감도 재발의 두려움을 높입니다. 


또한 죽음을 떠올렸을 때 제대로 살지 못한 삶, 나답게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가 클수록 죽음의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이제 막 내 삶이 시작되려 하는데, 이제 막 인간답게 살아보려는데 암으로 인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면 나 자신이 내 삶의 일 순위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후회로 다가옵니다. 이럴 경우 스스로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하는 사람들에 비해 재발의 두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죽음의 공포와 함께 어차피 죽게 될 거 살아서 뭐하나 하는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죽음을 앞당기고자 소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실존적인 고통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유한한 삶, 지금 이 힘든 삶을 굳이 견뎌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는 지금 이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죠. 평소에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또는 생각해가며 살지 못했던 사람들에서 암과 함께 찾아온 실존적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불안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매사에 모든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불안해하는 범불안장애나 강박적으로 걱정에 빠져있는 강박장애 환자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요. 이 경우에도 왜 불안을 멈출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불안해하는 동안은 자신이 걱정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동화적 상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걱정을 하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걱정을 통해서 자기 조절감을 보상받는 것이지요. 이런 보상은 걱정의 긍정 강화를 유도해서 걱정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가 범불안장애나 강박장애 환자들에게 종종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나아지고 싶습니까? 제 질문에 황당해하는 환자들도 많지만 걱정의 긍정 강화를 생각해 볼 때 이런 질문들은 환자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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