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재발 불안은 어떨 때 주로 유발될까요. 위험인자와 마찬가지로 유발인자를 알면, 미리 유발인자를 제거하거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념일 반응입니다. 암 진단을 받았던 날, 수술을 받았던 날 등이 다가오면 그때의 두려움이 다시 재 경험됩니다. 재발 불안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처럼 생각하고 치료해야 된다는 연구들이 종종 보이는데요. 암 진단 자체는 실제로 ‘나르시스틱 트라우마 narcissistic trauma’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고, 내 인생은 온전하다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내 삶은 좋은 삶이고 나쁜 일은 티브이에나 나오는 일이고 남들에게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암 진단을 받는 순간 이런 믿음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 믿을 수가 없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남들에게만 생길 것만 같던 나쁜 일이 내게 생기면 온전하던 내 인생에 큰 결함이 생긴 것으로 인식하고 자존감에 손상을 입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암 진단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암 치료 과정에서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각인되는 경우도 있고, 암 환자를 대하는 타인의 태도나 사회적인 편견이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험이 트라우마로 인식되고 높은 불안과 함께 마음속에 각인될 경우 PTSD 환자들이 보이는 과각성이나 회피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암 진단받던 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새로이 암 진단을 받은 주변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던지, 티브이나 매체에서 암에 관한 소식을 듣는다던지) 그 시간을 재경험하고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암 치료가 끝나서 의사와의 만남의 텀이 길어지는 경우 분리불안을 경험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수술 부위 통증이나 암 진단 때와 유사한 신체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두려움이 커질 수 있고, 갑자기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했거나 이혼, 실직, 사별, 자녀의 결혼 등 인생의 큰 일을 겪는 경우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고 지금 재발을 하게 되면 얼마나 가족들에게 더 큰 짐이 될지 상상하면서 불안도는 커지게 됩니다. 정기검진이 다가오는 날에도 재발 불안이 커지는데 이런 예기불안을 scanxiety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기불안은 공황장애 환자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공황 증상을 겪었던 장소나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공황 증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불안해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항암제의 약 냄새만 맡아도 구토감이 일어나는 것 역시 일종의 예기불안 증상입니다. 정기 검진을 받으면서 암을 진단받았을 때의 불안감이 몰려들며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겁니다. Scanxiety를 겪는 사람들은 CT나 MRI를 찍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 그동안의 성적표를 받아 드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도 합니다. 마치 암의 재발이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술 한잔, 고기 한점 먹었던 일,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았던 날들에 대해서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책감은 다시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자기 관리를 소홀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