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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요 Mar 04. 2022

재발 불안을 가진 환자와의 대화, 어떻게 시작할까

대화의 기본은 타인에게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의 가치 판단이나 편견을 내려놓고,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따뜻한 태도로 환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환자의 답변을 있는 그대로 듣고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환자가 잘못된 생각을 하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환자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누군가의 생명에 위협(자해, 타해) 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면 그 생각을 대해서 고치려 하지도 말고, 판단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누군가에 의해서 평가되고 판단되는 순간 우리는 입을 닫습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환자의 있는 그대로를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환자가 비논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이거나 극단적으로 감정 표현을 하여 듣는 이의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차라리 침묵을 지키고 환자를 묵묵히 바라봐 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타인에게 털어놓고 자신의 귀로 듣는 환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곧장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반복해서 확인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와의 관계만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화의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사실은 ‘연결’입니다.  내 이야기를 전하고, 내가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타인과 나는 연결됩니다.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이 됩니다.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의사는, 의료진은 환자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하면 좋을 적절한 질문들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환자의 삶과 암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환자를 전체의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돌보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이 중 암이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어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어떤 이들은 암의 의미가 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상이 내게 내리는 처벌이라는 이도 있고, 잘못 산 삶에 대한 결과처럼 여기며 죄의식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암의 재발은 더 큰 처벌적인 의미가 될 수 있고 이런 생각은 재발 불안의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암 진단과 치료 전후로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직장 생활과 가족, 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달라진 삶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정체성, 자기 이미지, 자존감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환자를 잘 도와주기 위해서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때로는 암 진단을 통해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일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들을 만납니다. 이런 이들은 암을 처벌로 여기는 이들보다 우울, 불안,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서 암을 통한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자의 감정에 대해 묻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몇 주간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우울이나 불안의 정도를 묻습니다. 종종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는 슬픈지 우울한지 좌절했는지 안타까운지 화가 나는지 무기력한 지 절망스러운지 등 예를 주고 가장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한 단어를 선택해보도록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여자보다 남자들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애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는 최후의 감정은 분노와 혼란입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고, 그 혼란스러움 때문에 예민해지고 짜증을 쉽게 내며 화를 내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에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일은 어렵습니다. 혼란스러워하며 화내는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가려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고,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 뇌는 좀 더 원시적인 뇌의 역할이고 언어의 뇌는 좀 더 고차원적인 뇌의 역할입니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훨씬 감정을 조절하기도 쉬워지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쉽습니다.  


환자가 감정을 표현했을 때 의료진의 1차적인 역할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주는 스펀지입니다. 감정에 복받쳐서 우는 환자가 있다면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기다려주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담아내 주는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환자에게 치료적인 힘이 됩니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당신이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이야기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의 감정이 진정되면 그때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힘든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어서 고맙다.‘ 이 한마디만 해주면 됩니다. 이에 더해 지금 당장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없더라도 앞으로 환자의 치료자로서 지속적으로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알려주면 됩니다.  


환자가 호소한 재발 불안의 여러 가지 원인에 따라 각기 다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데요. 

먼저 직장을 잃고 관계를 잃고 좋아했던 취미생활을 못하고, 자아정체성을 잃는 등 건강했을 때의 삶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연결된 경우에 저는 환자가 그 상실감에 빠져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줍니다. 잃어버린 것을 애도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잃어버리고 살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합니다. 충분한 애도 없이는 다시 일어설 힘도 얻지 못합니다. 바닥끝까지 내려가 슬퍼한 다음, 그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도록 저는 독려합니다. 또한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변한 경우도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암을 가지고 사는 것은 재발에 대한 걱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함께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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