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안도 중독이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약물 중독 환자들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점들 중 하나가 지루함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술이나 담배를 끊었을 때, 술 담배로 쓰던 시간을 지금부터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많은 마약 중독 환자들이 ‘지루해서’ 마약을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 지루함을 메꾸어줄, 중독만큼이나 몰입할 수 있는, 중독보다 건강하고 의미 있는 활동거리를 찾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해하는 시간을 대체할, 기꺼이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취미나 운동, 여행, 새로운 배움, 가족들이나 친구와 함께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이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걱정하며 보내던 시간이 추억을 쌓는 시간, 나를 발전시키는 시간, 삶을 의미로 채워나가는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런 활동을 찾기 어렵다면 자신의 삶이 아닌 더 큰 세상과 타인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슷한 처지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환자들을 돕거나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일도 불안 중독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선생님들도, 내가 개인적인 일로 걱정에 쌓여있고 마음이 불편할 때 환자를 돌보는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그 걱정을 잊고 보람을 느끼며 마음이 나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불안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그런 불안의 중독 고리를 끊고 불안의 시간을 삶의 의미를 주는 시간으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불안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걱정을 하는 동안에는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런 심리의 기저에는 걱정을 통해 자기 조절감을 보상받으려는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불안이 주는 이득일 수 있습니다. 걱정을 하다 보면 뭔가 하나라도 더 찾아내서 대비할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주는 이런 긍정 강화는 무의식 속에서 불안감이 계속되도록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럴 때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내가 이 불안에서부터 정말 벗어나고 싶은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불안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불안은 우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대비하게 합니다. 원시시대에는 필수적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생존에 대해 매 순간 걱정하고 대비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고 사회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매 순간 불안해하지 않고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료진을 믿고 병원을 믿는 일이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또한 내가 어떤 암을 진단받았고, 어떤 단계이며,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어떤 부작용을 겪었고 재발했을 때는 어떤 치료 선택지가 남아있으며, 의사와 얼마나 자주 만나고, 정기 검진은 언제 하고 어떤 검사를 왜 하는지 등에 대해 잘 기록하는 자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은 재발 불안을 낮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의료 기록을 한 페이지에 잘 정리해두면 새로운 의료진을 만나도 대화하기 쉽고, 반복해서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할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내 신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는데 유용합니다. 팔로업 계획들도 다 작성되어 있고, 언제 어떤 증상일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도 기록되어 있으면 단순히 견딜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의료진을 컨택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죠.
재발 불안을 유발하는 걱정들 중에서 내가 현재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구분을 하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더 나은 상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의 걱정은 더욱 커집니다. 자기 조절감과 불안감은 서로 반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몸을 움직이고 행동을 취할 때 우리의 자기 조절감은 커지고 불안감은 낮아집니다. 수동적인 태도로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은 불안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