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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요 Mar 04. 2022

암은 가족의 질병이다.

암이 재발하면 가족을 상실하는 것, 자신의 가정 내 역할을 상실하는 것을 걱정하여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집니다. 암으로 인해서 가정에서의 원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족의 일원일 수 있다는 점, 당신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족은 적극적으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환자의 배우자와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환자와 함께 돌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몇 살인지 부모의 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아이가 학교에서 펑션이 가능한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들 중에 부모의 질환이 자신의 탓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모가 치료를 위해서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부모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심각한 분리불안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암 환자의 자녀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할 때 어떻게 대화하고 안심시킬지 환자와 그 배우자는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에는 암환자 자녀들을 위한  상실 캠프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상실 캠프는 암환자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도록 하고 그들을 통합적으로 돕는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가족을 함께 돌보아 주어야 환자의 재발 불안을 낮출 수 있습니다. 


암환자 치료의 조기에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가족 교육도 실시되어야 장기적인 가족 전체의 불행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재발에 대한 걱정은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므로 가족 전체를 돌보는 일이 환자의 재발 불안을 낮추는데 중요합니다. 


암이 한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그레이스 앤 그릿이라는 영화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켄은 아직 생존하는 실존 인물로 미국의 현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입니다. 새로운 철학 이론을 정립할 정도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인데요. 그의 아내인 트레야가 유방암을 진단받으면서 겪는 어려움을 책으로 써냈고 이것을 영화한 것입니다.  


암을 진단받으면 사회적 역할에 변화가 오고 나의 정체성에 변화가 온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면,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옵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이전과 같지 않고, 암은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내가 맺는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관계의 변화에도 환자와 가족들은 재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켄과 트레야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새로운 철학 이론을 정립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인 켄과, 심리학자인 트레야는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도 암이라는 삶의 변화를 맞았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켄과 트레야는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갔다가 병이 진행하면서 둘의 갈등이 깊어지고, 켄은 알코올 중독을 겪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할 계획까지도 세웁니다. 결국 도시로 나와 친구들과 다시 연결되고, 환자 가족을 위한 그룹치료에 참여하고, 개인 상담치료를 받는 등 제삼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회복됩니다. 


가족은 환자를 위해 일상의 루틴을 함께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거기 있어주며, 서로가 어떤 모습이든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역할입니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함께 하겠다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족의 역할입니다.   


그렇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죠.  혹시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시나요 “Nobody is interested in chronic.” 암은 만성 질환입니다. 결국 암은 가족의 질환이며, 가족은 서로의 치료자가 될 수 없으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암은 한 사람의 질환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흔드는 질환입니다. 만약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병이 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은 더 큰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가족은 환자와 동일시된 감정의 동요와 삶의 짐을 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는 환자와 가족을 웃게 하고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상실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친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친구는 환자의 상황을 완전히 공감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성별, 비슷한 연령, 같은 병을 앓는 환자 친구, peer support,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죠.  


이 세계와 인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위대한 철학자 조차도 가족 간병을 하며 자살 생각을 하고 중독 환자가 됩니다.  정신과 의사라고 더 사랑을 잘하고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죠.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옳다고 믿는 것이 많은수록 스스로를 judging하기도 쉽죠. 또한 원래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와 도덕적인 기준 자체가 높았던 사람들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강도와 높이도 더 큰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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