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 불안을 치료하는 데는 한 명의 치료자가 아닌 마을 전체, 전체의 치료 팀이 필요한 팀워크teamwork라고 말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리고 이 팀의 팀원에는 환자도 포함됩니다. 재발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 환자가 팀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려주어야 합니다.
결국 재발 불안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암환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불확실성에서 기원합니다. 이 불확실성을 낮추려면 자신이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함으로써 자기 조절감과 자아존중감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환자의 역량강화라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 중에는 자기 관리가 포함됩니다.
자기 관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를 잘 재우고, 잘 먹이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서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내고, 자신의 몸의 변화에 대해서 잘 알고, 적극적으로 병원 치료에 참여하고, 건강한 방어기제와 극복기술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기 돌봄 방식입니다. 소위 말해서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잘하는 것이죠. 내 몸과 마음에 시간과 투자를 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자기 관리 이외에도 자기 삶의 가치관과 삶의 의미, 자신의 신체의 작은 변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이를 의료진에게 알려서 개별화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앞서 글에 암에 대한 지식, 치료 전반에 대한 의학지식이 부족할수록 재발 불안이 높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의료진이 환자에게 이를 반복적으로 교육하고 설명하는 일도 재발 불안을 낮추기 위해 중하지만, 환자 스스로 공부하고 찾아볼 수 있게 자료를 제공하거나 추천하는 일도 역량강화를 위해 필요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죠.
또한 환자 자신은 아픈 환자 역할을 자처하며 타인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퇴행하여 취약하고 의존적인 아이 같은 태도를 멀리하고, 아픈 자신을 희생양이나 피해자로 스스로 여기는 일도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체 질병이나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자아정체성이 무너진 환자라도 그들의 내면에는 건강할 때 쓰던 성숙한 방어기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 방어기제를 파악해서 이를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아마도 이 일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종종 "당신은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강하다."라고 말해줍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스스로 피해자 역할을 하거나 어린 아이처럼 퇴행하는 행동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환자 주변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은 꼭 필요합니다.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지금을 살아야 된다는 것. 그럴 수 있는 성인이라는 것. 그렇게 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환자 스스로 가지도록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과 사를 걱정하며 사는 암 환자들 중에 건강한 사람들이 하는 일상의 크고 작은 걱정들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난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는데 당신은 그깟 잘못 배달된 택배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고?' 하면서 말이죠. 일상의 어떤 작은 걱정도 그 걱정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입니다. 자잘한 사건들도 큰 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결코 사소하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암에 대한 걱정에만 몰입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귀 기울여주지 못하고 그들의 걱정들에 공감해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더 이상 당신과 나누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암을 앓고 있다고 해서 나의 가족과 친구가 그들의 일상을 제쳐두고 나를 먼저 배려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암이 삶의 전부가, 관계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