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피디 Jul 14. 2019

나는 더 혼자가 되기로 했다

는 지금 뉴욕으로 가는 14시간짜리 직항 비행기 안이다. 와이파이도 안되는 비행기 안에서 오랜만에 오롯이 혼자됨을 마주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나는 더 외로워지기로 했어


내 인생에서 나름 가장 컸던 사건인 7년반 연애의 끝이 있은 후로 약 8개월이 지났다. 이별 후 나는 바로 집에서 독립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친밀했던 사람과의 강제적 분리를 겪은 후 나는 모두로부터 멀어지기로했다. 더 외로워지는 길을 택했다.

좀 가학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아픈 김에 다 아프고 더 강해지고 싶었다. 결국 혼자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빨리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게 좋지 않을까?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이성과의 작은 이별을 계속 겪으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몸과 마음 모두 타인과 완전히 분리되고도 ‘괜찮은’ 모습이 되는 것. 그게 내 서른살의 첫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고립시켰다.

그런데 방법이 잘못됐다. 외로워지는 것과 혼자가 되는 것은 달랐다. 꼭 외로워야 제대로 홀로 서는건 아니었고, 혼자가 된다고 해서 외로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제대로 혼자가 되는 방법을 몰랐던거다.



내가 진짜 오롯이 혼자였던적이 있었나?


넷플릭스 영화인 ‘나의 서른에게’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홍콩의 완벽한 커리어우먼인 주인공은 완전히 혼자인 상태를 경험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런 독백을 한다.


지금까지 난 내가 독립심이 강한 사람인줄 알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고향으로 가셨다.
남자친구는 출장을 가서 곁에 없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보니
내가 얼마나 의존적인 사람인지 알게 됐다.
평소에는 일에 의존했고
퇴근 후엔 남자친구에게 의존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잠에 의존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혼자 있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혼자일 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대로 나였다.


이별 후 내 서른살의 봄과 여름은 쏜살같이 흘렀다. 아니다. 내가 쏜살같이 흐르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켜놓고 혼자 있는 상태를 견디기 위해 미친듯이 다른 것에 의존했다. 일에, 운동에, 공부에, 소비에, 친구에, 그저 탐닉하는 관계에, 하다못해 집안일에, 일요일 아침엔 아르바이트도 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24시간 내내 to do list를 만들었다. 사실 난 두려웠던거다. 내가 오롯이 혼자되는 그 시간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나만의 만트라를 찾아서


하지만 내가 의존하고 있는 모든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에 가깝다. 진짜 건강한 의미로 ‘혼자서도 잘해요’가 되려면 사라질 수도 있는 것, 특히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나는 OO으로 삽니다’의 OO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발현해 흔들림 없이 영원히 나의 영혼을 충만하게 해줄 무언가. 그 틀림이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 나는 비로소 진짜 혼자 선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다.


물론 아직 잘 모른다. 나를 가장 평온하게 하는 것이 여행과 글인 것을 보면 이것이 나를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인간’으로 만들어줄 만트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잘 모른다. 브런치 작가가 되던 첫날 별 생각없이 우러나온 한마디를 적어버린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글을 쓴다’는 소개의 한줄이 사실은 진짜 나였을 수도 있다. 또는 다른 것이 더 있을 수도 있고.


여튼 중요한건, 이제 내 영혼을 지켜줄 만트라를 찾아야만 진짜 홀로 설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다. 그게 여행이든 글이든 다른 것이든, 서른살의 남은 시간은 되도록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 무언가를 내 안에서 찾아 헤맬 작정이다.




Anchoring


나와 영혼이 통하는 작가인 친구가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앵커링(Anchoring)이라는 말 알아? 닻을 내려서 단단히 고정된 무언가를 두는 행위? 그런걸 말하는건데 내가 좋아하는 말이거든.

혼자 멀리 내려와서 살다보면 삶이 진짜 헛헛하고 너절하고 연약하고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그 때 마음 한가운데에 말뚝을 하나 박아넣는 것처럼 망치질 하는 상상을 해. 그 말뚝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닻이 있으면 바람이 불고 해수면이 일렁여도 내가 떠내려가지는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불안에 영원히 잠식되지 않을 수 있다, 뭐 그런 마음이 들어.

나도 그 닻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다 사라져도 나를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가 뭘까? 내 삶은 무엇으로 지탱되는 걸까? 생각을 많이 해.

‘사실은 그걸 찾아나가는게 인생 아닐까’라는 생각도."


맞아 언니. 그걸 찾아야하나봐. 인간은 본래 고독한거라면 그걸 찾아나가는게 삶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제 찾아보려고.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더 충만한 ‘혼자’가 되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