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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Aug 02. 2019

아빠는 딸이 큰사람이 되길 바랐다

열정적으로 일하기에 너무 예쁜 나이야


결혼할 줄 알았던 남친과 헤어졌고, 몸은 안 좋고, 일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고, 좋아하는 사람과 인연은 닿지 않고, 습기 가득한 날씨에 축축 쳐져 우울한 말들을 뱉어내는 나에게 아빠는 말했다.

"결혼도 좋고 아이를 낳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지금 네 나이가 정말 반짝반짝거리는 나이거든. 일이 참 재미있고 열정도 있고. 경력도 있으니까 인정도 받고.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여자들이 더 잘하잖아. 검블유(이걸 대체 언제 본 건지 모르겠지만) 봐봐. 여자 주인공들 얼마나 멋있냐. 아빠는 우리 딸이 그렇게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 이제 서른이니까 10년은 충분히 그렇게 예쁠거야. 뭔가를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제일 예쁘거든"


우리 부모님은 항상 이랬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약간은 부족한듯이 자랐지만 엄마 아빠는 항상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90년생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고 다들 낙태를 했다지만 엄마는 "그게 다 남자애들 이겨먹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좋~은 뜻"이라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마는 내가 글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없는 살림에 위인전 전집을 사줬고, 아빠는 아내에겐 지극히 가부장적인 남자였으나 딸은 큰 사람이 되길 바랬다. 현실보다 마음이 앞서 결국 허풍으로 남은 게 흠이긴 했지만 항상 "외국 유학을 보내줄 테니 해외로 나가 뭐든 해봐라"라고 했던 아빠, "우리 딸이 제일 똑똑하고 예쁘다"면서 언제든 나의 선택을 존중해줬던 엄마 덕분에 나는 당당하게 클 수 있었다.


열일곱살에 뽑아놓은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이라는 책의 위즈덤카드



너는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어


특히나 아빠는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길 바랐다. 간절히 원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성공한 사업가의 꿈을 딸의 열정적인 사회생활을 보며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되어라'라고 주문한 적은 없었다. 남들 다 욕심내는 여자직업인 교사나 공무원이 나의 이상이 아니라는걸 아빠는 알았다. 내가 6개월도 못버틸거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라고 했다. 대신 딱 하나, 딸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고생하는건 싫은게 부모 맘이라고, 사업은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넌지시 건넸을 뿐 강요는 아니었다.


자이지만 말수가 적고 내면이 단단한 타입인 남동생보단 내가 아빠의 젊은 날과 더 비슷하다고 했다. 불 같은 성격과 고집. 사람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은 것까지. 그래서 아빠는 나를 잘 이해했다. 내가 어떨 때 일에 미쳐있고 어떨 때 지치는지를 아빠는 정확히 짚어냈다. 그리고 누구보다 실용적인 처방전을 써줬다. 사회인이 되어가며 나도 아빠와 공감대가 많아졌다. 그가 내 열다섯 생일날 일 때문에 술을 진탕 먹고 밤 12시에 파리바게트에서 제일 큰 파티용 케이크를 사 온 날의 기분이 어땠을지, 잠든 나를 굳이 깨워 생크림 케이크를 먹이며 그가 무슨 생각에 잠겼을지, 이제 아주 조금 이해한다.



결혼에 집착하지 말되
다양한 사람을 만나 너를 보여줘


"그렇게 오래 예쁘게 일하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너만의 방법을 찾아야 롱런할 수 있어"라며 잔소리를 잊지 않은 아빠는,


"사랑은 언제든 뜻밖에 찾아오니 연연할 거 없어. 결혼할 남자를 찾는 거에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지는 말되 모임에는 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나가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 대화 한번 해보면 다 알아. 너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분명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거야"라고 나를 위로했다. 깊은 위로였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법이었다.



고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부침을 겪을 때마다 자존감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부잣집에서 풍족하게 자랐어도 여전히 사회에서, 남녀관계에서 주눅 들어있는 여성들이 참 많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모가 인간의 평생을 지배하는 정신적 뿌리에 미치는 영향은 무서울 정도로 지대하다.


는 복 받았다. 무엇보다 값진 유산이다. 이제 내가 갚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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