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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Feb 12. 2019

서른살, 어른의 연애란 이런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 이건

2019년 2월의 어느 날,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인생은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걸까.


나는 서른살이 된지 한달하고 열흘이 됐다. 생일은 8개월 넘게 남았으니 아직 28살이지만. (만 나이 제정안은 언제 통과되는거야)


스물다섯이 되던 겨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경력이나 연차에 비해 꽤 여러번 이직의 스트레스를 맛봐야 했지만 난 항상 올라왔다. 더 나은 연봉, 더 나은 재미,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내가 서른이 된걸 자축하고 다시는 이십대가 되기 싫다고 되뇌이는건 아마도 다시는 겪어낼 자신이 없는 그 치열함 때문일거다. 이 사회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자 나이 삼십대에 대한 자기위로가 아니다. 진심이다. 레알.


이제서야 어느정도 다 자리를 잡았구나, 비로소 이것이 평화이구나 느끼며 살던 그 무렵, 인생에서 가장 견고하다 믿었던 것이 무너졌다. 이별. 그것도 롱디 후 바람.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었다. 네발로 씩씩하게 산을 오르던 내가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뻔 했는데, 다행히도 나머지 세개의 발이 필사적으로 나를 붙들었다. 친구와 가족, 그리고 일.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들이 결국 나를 붙드는구나. 가장 고통 없이 쉽게 흘러가던 것이 제일 쉽게 사라지는구나.


이별은 어려웠지만 잊는건 쉬웠다


태어나 한번도 느껴본적 없는 비극적 전율을 안겨줬던 참혹한 이별은 언제 그랬냐는듯 허무하게 잊혀졌다. 이렇게 쉽게 정리될거면 진작에 끝냈어야 했나, 아닌 인연을 붙들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아가 그런식으로(?) 나에게 쉽게 단념할 기회를 준 그 사람에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딱 한달의 회복기간을 가진 뒤 나에겐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정확히 100일이 지난 지금 나에겐 '남자친구'라고 불러야하나 싶은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것도 참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연애는 일종의 도박이다. 이 남자는 6개월-아니 이제 벌써 5개월이구나- 뒤에 2년간 미국으로 떠난다. 그걸 알고 만났다. 소개팅해준 남사친을 미친놈이라고 욕하면서 밥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만난 이 사람은 나와 너무나 잘 맞았다. 대화도 잘 통했고 남자로서 매력도 있었다. 이 두가지를 다 충족하는 남자를 만나는건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건데, 잘 맞았다.


신이시여 대체 왜 이제서야 이 사람을 보내셨나요.


두번째 만나던 날, 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이제 어떡해?


칼은 내가 쥐고 있었다. 고민을 했지만 마음이미 그와 마주 앉은 10분 내에 정해졌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만나고 있다. 특이한 방식으로.


관계를 규정하지 않고, 사귀자고 말하지 않으며, 만난 일수를 헤아리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연애 상태. 어떤 사람들은 '어른의 연애'라고 치하하고 친한 친구들은 미쳤냐고 하는, 어쩌면 나에게 손해일 수 밖에 없는 시한부 만남. 100일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무려 7년 넘게 첫사랑과 연애한 지고지순한 겁쟁이인 내가.


내 뜻대로 되는건 없어


그런데 이제 모르겠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어떤 남자를 만났고, 좋다. 이 남자랑 몇개월 뒤면 헤어질걸 알지만, 그 이유 때문에 우리의 인연을 인위적으로 끊어낸다 해서 나에게 남는건 뭘까? 


새로운 남자를 만날 기회? No. 소개팅은 이 사람을 만나면서도 할 수 있다. 우린 '자유로운 연애상태'니까. 아니면, 결혼할 남자를 찾고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 No. 결혼은 나에게 당장의 화두가 아니다. 이별 후 서른살이 되면서 '당장 결혼을 하기보단 홀로서는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만나기로 했다.


요즘 네 연애 얘기가 미드보다 재밌어


자, 그럼 정리해보자. 나의 지금 상황은 완전 드라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시나리오를 써 나간다. 내 뜻대로. 지금의 이 위험천만한 연애가 먼 훗날에 파스텔빛 한여름밤의 꿈으로 추억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하겠다. 2019년 여름의 내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해 울고불고,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이별에 다시 한번 주저앉는다 하더라도, 이 뜨거운 감정을 충실히 겪어내는게 청춘의 의무 아닐까.


미쳤지 내가


그래서 우리 둘은 오늘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미쳤다 진짜"라고 말하며 사랑을 하고,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미래를 생각하지마. 현재를 즐겨"라는 말로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 길고 긴 인생의 딱 6개월. 이 시간 만큼은 흘러가는대로 두자. 내가 움켜쥘 수 없는 물줄기를 틔우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힘에 맡겨보자. 그게 만약 신이라면, 누구에게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는거니까. 그 순간을 고요하게 기다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멘.


Enjoy your life to the fullest. Maximize it. Seize the moment.




P.S.나의 이별 이야기에 어떤 인생 선배님이 이런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다. 그 분이 나의 지금 선택을 잘했다고 해주시면 좋겠다.


상처받지 않는 사랑은 없답니다. 상처받고 아파해도 사랑할 수 있어서 빛나고 아름답지요. 너무 가슴 아픈 이별, 미칠듯한 슬픔. 하지만 그 아픔마저 없었다면 내 20대와 30대가 얼마나 초라했을까요. 그 모든 것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인연을 만나고, 그때서야 편안한 행복이 온답니다. 힘내세요.



p.s.를 달고 있는 지금은 2019년 7월이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넘어서 좋은 친구가 됐다. 여전히 만나면 다섯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맛있는걸 먹고 인생의 가치를 논하며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고 2년 뒤를 열린 결말로 잠궈둔채.


그와 내가 사랑으로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영혼이 통하는 친구가 되었기에 해피엔딩임은 확실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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