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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Apr 05. 2019

칼퇴령이 끝났다

역시 불가능한 걸까

칼퇴령이 내린 지 벌써 1년 반. 하지만 이미 칼퇴를 지키지 않은지는 6개월이 넘었다. 칼퇴령은 끝났다.

공식적으로 종료가 공표된 건 아니다. 다만 대표님은 팀장들을 모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더 이상 칼퇴에 대해서 압박하지는 않겠다"고. 이말인즉슨 항상 1등으로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표님이 문 밖을 나서며 '왜 다들 퇴근하지 않는거냐'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대표님도 지쳤음이 분명하다.


 탓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다. 다만 우리 회사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기업 내에서 왜 칼퇴는 이토록 지켜지기 힘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일단 절대적인 일의 양이 너무 많아


우리는 콘텐츠 회사다. 마케터도 있지만 에디터와 영상편집자와 디자이너 등 구성원의 대부분이 글과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데 시간을 쓴다. 칼퇴령이 내리고 제일 먼저 한건, 정상 근무 시간 내에 한 에디터가 쓸 수 있는 글의 양을 정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개 정도가 적합하다는 결론이 났고, 한동안은 모두가 칼퇴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문제는 글 쓰는 일 바깥에 있었다. 전통 미디어의 기자면 정말 기사 쓰는 거 하나로 일이 끝날 텐데, 우리 같이 1) 모든 콘텐츠가 해외취재 기반이어서 밥 먹듯 출장을 가고 2) 글과 영상을 모두 만들며 3)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채널을 운영하는데 4) 그런 브랜드가 두 개여서 사이트도 두 개.... 인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뉴미디어의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영상을 늘리고 채널을 늘리고 일을 벌이다 보니 에디터들이 글을 쓰는 시간보다 그 외 업무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의 마감, 매일 올리는 단신,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채널 모니터링과 분석, 뉴스레터 제작 및 발송, 영상 기획, 영상 촬영, 영상 썸네일 제작, 출장을 위한 항공권 및 호텔 서치 및 예약, 각종 해외 행사 서치와 컨택, 외부 대행사 미팅과 컨트롤... (쓰고 보니 너무 많아서 팀장으로서 좀 미안해지는데) 이 밖에도 업무가 태산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절대적인 일의 양이 절대로 정상 근무 시간 내에 이뤄질 수 없는 양이라는 거다.



그럼 사람을 더 뽑으라고?


솔직히 다른 회사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다. "거기는 사람 더 뽑으면 일 더 안 주나요? 진짜 뽑은 만큼 N분의 일이 실현돼요?"


사람을 충원하면 일이 커지는 법이다. 두 사람이 충원되면 일은 세배로 늘어나는 게 조직의 생리 아니던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원 충원'은 현실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솔직히 팀장으로서 팀원의 충원은 반갑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회사 입장도 이해가 간다. ROI가 중요하지. 런칭한지 얼마 안 된 두 번째 브랜드는 여전히 돈을 못 벌고 있고, 일은 키워야 하니, 기존의 구성원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 충원을 하는 건 사치다. 그래서 우리 팀은 1년간 팀원이 많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일은 더 많아졌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그렇게 세이브한 매출을 비교적 공평하게 직원들에게 나눠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정말 빡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악질적인 대행사에서 겪었던 사례를 들어보자면,


옆 사람 퇴사했는데 자리를 안 채워주네? 나보고 다 하라고 하네? 일이 두배가 됐네? 새로운 사람 오는 것만 바라보면서 버텼는데 오니까 내 일을 안 나눠가네? 어라 사람 왔다고 다른 팀에서 일이 더 넘어오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더 많아졌네? 계속 많아지네? 근데 위에서는 사람 뽑아줬다고 생색을 내네??????????? 그 와중에 내 월급은 그대로네???????????? ㅅㅂ 거지 같네 퇴사해야지 -> 그 옆사람이 똑같은 고통을 당함.


대부분 이렇지 않나. 이게 한국 기업의 현실이다.



진짜 칼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위 두 가지 중 하나가 해결되면 된다. 절대적인 일의 양이 줄어들거나, 사람을 충원하되 일은 늘어나지 않아 깔끔하게 N분의 1이 되거나. 그게 불가능하니까 칼퇴령이 끝난 거다.



걱정되는 건 조직의 분위기


여튼 그래서 칼퇴령이 끝난지는 좀 됐다. 걱정되는 건 점점 루즈해지는 조직의 분위기다. 칼퇴를 해야 하니 타이트하게 일했던 이전의 분위기와 달리, 요즘에는 업무 시간에 나가 잡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차피 야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니 나부터도 어떤 날은 슬렁슬렁 일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효율성의 하락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눈치성 야근은 전혀 없기 때문에 여전히 빨리 끝내고 빨리 가겠다는 사람들이 반은 된다. 그래서 전체 분위기가 엉망은 아니지만, 시간을 때우다가 가야 하는 분위기의 회사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업무는 오전에 이미 다 끝났는데 부장님이 퇴근을 안 해서 나도 밤 10시까지 책상 앞을 지켜야 하는 그런 종류의 야근이 일상이라면, 비효율성이 극에 달하는 것은 물론 조직 분위기는 개판이 된다. 일이 없는 조직에 시간이 많으면 정치가 끼어드는 법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회사 전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팀장으로서, 칼퇴령이 끝나더라도 우리 팀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나부터 정상 근무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해야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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