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시간이 말하는 것들

크로아티아에서

by 혜령

슬픔이 지난 자리는 문득문득 아프다.

그래서 스치지 않으려는 세월을 모른 척 보낸다.

어느덧 그 자리에는 딱지가 앉아 단단해진 듯했다.

그래도 간질거리는 딱지 아래 상처는 더 이상 날카로운 슬픔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잊힐까 안타까운 흔적만 여리고 붉게 각인되어 있다.

만져지는 상처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데, 아문 곳을 보는 기억은 다시 슬프다.

무디어진 날이 되어 애처로운 것이 새로운 슬픔이 된다.



장화 같은 것이 있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혹은 시간과 시간 사이에.

사건과 사건 사이에.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다녀오는 것.

그것이 장화이고 진통제이고 갑옷이다.

피할 수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아프지 않게.

견디는 일로만 삶을 태우지 않게.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호사를 택한다.

어디서든 활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심장의 혼란이 잦아드는 때에 책장을 덮는다.

감히 행복하다고, 다행이라고 감사의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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